북한통신(38) 북한의 두 가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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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통신(38) 북한의 두 가지 풍경
  • 김창범 목사
  • 승인 2017.01.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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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 목사 / 더미션로드 대표

최근 영국의 한 온라인 신문이 북한을 방문한 남한의 정치인, 종교인, 경제인 등 주요 인사들에게 행한 성 접대에 관한 보도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북한을 다녀온 인사들이 북한의 실상을 밝히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는 얘기이다. 

이 가운데 한국 기독교계 인사들도 포함되었다는 암시를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복음과 함께 남한교회가 가진 부와 풍요를 전하러간 이들의 선의가 예상치 못한 덫에 걸려든 것이다. 사악한 유혹에 넘어간 이들로 인하여 진정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많은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소원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북한 인권단체인 북한정의연대(정베드로 목사)는 3년 전 ‘북한지하교회 박해실태’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진 일이 있다. 이 자리에서 증언한 한 탈북여성의 처절한 외침을 한국교회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여자전도사로 일한 그는 1987년 김일성종합대학의 신학과를 1기생으로 졸업했다. 그는 봉수교회에서 3개월 훈련을 받고 칠골교회 전도사로 시무했다.

북한이 양성한 신학과 출신들은 모두 기독교인으로 위장 잠입시켜 지하교회를 색출하고 지하교인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들 중 일부는 반기독교 전문가로 훈련돼 남한 교회로 들여보내고 있다. 신학과는 현재 ‘영성학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그는 해외 파송을 받았으나 말 실수가 적발되어 본국에 소환되었고 평남 개천수용소, 즉 ‘11호수용소’에 수감되어 10년을 고생했다. 11호수용소는 북한 내 기독교인들만 수용하는 특수시설로서 1998년부터는 일반 탈북자들도 수용하고 있다. 그는 당시 전도사로 지낸 경험을 인정받아 죄수들을 감독하는 총반장으로 지명되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가까이에서 직접 관찰하고 접촉할 수 있었다. 그 곳에는 6,0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수용되어 있었고 한 번에 25~30명의 기독교인들이 처형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10년 동안 그가 확인한 사형수는 모두 4,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그의 증언은 북한의 그루터기 기독교인들에 관한 것이다. 그루터기 기독교인이란 대대로 신앙의 전통을 지켜오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선대의 신앙을 지켜오는 이들을 잡아들인 김일성은 이들을 향해 “내가 믿는 공산주의가 승리하는가,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승리하는가, 두고 보자”며 “남조선이 해방되는 날까지 가두어 두라”고 했다. 수용소에 수감된 그루터기 기독교인들은 당시 약 100여 명 정도였고 이들의 자녀는 다른 곳에 분리 수용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온 종일 노동에 동원되었고 말이 없고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아주 순종적이었다고 했다. 가끔 특별한 일에 동원이 됐는데, 그것은 생체실험이었다. 이들은 약 한 달 전부터 특식이 배급되어 정상인 상태로 건강을 회복시켜 생체실험장에 보내졌다고 한다.

그는 “눈알이 터져 나오고 벌레가 혈관을 기어 다니는 광경을 보았다”는 끔직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들의 일부는 핵실험장의 인체실험에 동원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우리는 한국 기독교 현대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두 가지의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일말의 희망 가운데,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평양 행각에 대해 두려운 맘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그런 일탈을 보이고 있을 때, 북한 11호수용소에서는 그루터기 기독교인들이 참혹하게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참으로 충격 그 자체이다.

이 두 가지의 대비되는 북한의 풍경 앞에 우리는 여전히 국외자 혹은 방관자일 뿐인가?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 고통으로 주님과 함께 몸부림치는 현장이 바로 북한선교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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