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 음성을 듣고자 한다

(209) 점진적 순종 운영자l승인2017.01.10l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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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의 길을 제시할 십계명을 받기 위해 모세는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출 19:20). 시내 산까지 오는 여정에서 모세는 수많은 도전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매번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마다 그는 무조건 그분께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왜 산 아래로 오시지

않고 산꼭대기에서 자신을 부르시느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산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산 아래로 임재하시면 그들이 죽을까 두려워했다. 모세는 그 백성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다. 그는 그 백성을 위해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80세 노인이 가파른 시내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불러올리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 여부를 물어보셨다(출 19:3~6).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서 동의를 얻어낸다(출 19:7~8).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 그 사실을 전한다(출 19: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모세에게 일러주신다(출 19:10~11).

모세는 다시 산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준비시킨다(출 19:14~15). 셋째 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보는 앞에서 불 가운데서 시내 산에 강림하셨다(출 19:18).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 정상으로 다시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 아래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주의시키신다(출 19:20~22).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시 시내 산을 내려가 아론을 데리고 시내 산으로 오른다(출19:24). 그런 다음에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의 말씀을 듣는다(출 20:1).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모세는 시내 산에 처음 올라갔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순종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 말씀은 순종할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배웠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고 내가 동의할 만하면 동의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말씀하시는 분을 믿기 때문에 그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로 동의하는 것이다. 시내 산 언약을 일종의 결혼에 비유한다면, 신랑의 말에 모두 순종하겠다는 신부의 약속은 신랑의 말을 모두 검토한 결과가 아니라 신랑을 신뢰한 결과이다. 결혼 선서는 결혼 이후 내려야 하는 모든 결정사항들을 알고서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상대자의 인격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그분의 정결한 신부로 준비시키신다. 그들이 순결하고 흠 없는 신부이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지만”(신 7:7)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데 있다. 그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시내 산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몸을 깨끗하게 하고 옷을 빠는 일만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었다. 하나님은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출 19:21)고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외적으로 깨끗해진 것만 가지고 잘못 판단하여 하나님의 경계를 넘어설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심지어 그분을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조차 깨끗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신다(출 19:22). 제사장들조차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시내 산 주위의 경계를 넘을 수 없었다(출 19:23). 그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에야 비로소 실질적으로 거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와 아론도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매개자로 삼으셨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조차 두려워 했지만(출 20:20)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간 것은 그 자신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히 구별하여 부르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비록 죄인이지만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6).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 음성 듣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운영자  igoodnews@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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