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오늘날 외식(外飾)아닌 진정한 회개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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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오늘날 외식(外飾)아닌 진정한 회개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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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0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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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95개 조항 면죄부 반박문과 한국교회 개혁(II)

II. 고해성사는 진정한 회개와 다르다(1조항-4조항):한국교회는 오늘날 외식(外飾)아닌 진정한 회개를 필요로 한다.

1. 루터는 내면적 회개를 강조

▲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95개 조항의 원제목은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이다. 95개 조항은 9가지 핵심 주제들로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중심적인 주제 아홉 사항(필자의 분류)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하여 예리한 분석과 비판을 가한 것들이다. 

첫째 항목에서 루터는 진정한 회개와 고해성사의 차이를 밝힌다. 루터는 회개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은 신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한다는 뜻이다"(1조항). 루터는 예수님이 회개하라는 "이 말씀을 고해성사, 즉 죄를 고하고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2조항)고 천명한다. 진정한 회개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내적 회개가 여러가지 외적 고백을 동반하지 못한다면 헛 것이기 때문이다”(3조항). 루터는 말한다: “참된 심적 참회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4조항).

천주교(로마 가톨릭)의 고해(告解)성사는 왜곡된 것으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회개가 아니다. 13세기 중엽부터 천주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립한 7성례("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를 강조하였다. 천주교는 예수님의 회개를 왜곡하여 일곱 가지 생활의 영역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선행의 공로를 세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7성례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성체성사(성만찬)과 고해성사(사제(司祭)에게 죄고백)는 거듭 반복되는 성례들이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미사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성만찬에 참여해야만 되는 것으로 연계시켰다. 종교개혁 직후에 루터는 한동안 고해성사를 완전히 폐지시키지 않고 죄를 고백하는 제3의 성례라고 시행을 했을 만큼 강조한 바 있었다. 오늘날 천주교는 고해성사를 지속하고 있으나 개신교는 이를 폐지시켰다.

2. 초기 루터의 면죄부 비판은 온건했으나 나중에 강력한 거부로 나아감 

루터의 기본적인 인식은 아주 단순했다. 루터는 성도들이 진정한 회개를 하고 그 표시로서 돈을 주고 면죄부를 구매하여,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생각하였다면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전혀 진심어린 회개를 하지 않은 자가 돈으로 면죄부를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돈으로 사거나 팔 수도 없는 것이다. 당시 천주교에서는 내면적 회심없이 신부(사제)가 주는 죄용서의 성사(聖事)를 받는 형식적인 사죄 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이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루터는 먼저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나중에 루터는 본인이 면죄부 비판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것을 피력하면서 보다 강력한 면죄부 비판으로 나아간다. 회개하고 난 후에 그 표시로서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산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는 것이다.

당시 면죄부 설교가인 요한 테첼(Johannes Tetzel)은 10년 이상 이 분야에서 실적을 올리고 있던 도미니크회 신부였다. 그는 라이프지히에 두 사생아의 아버지라는 소문이 있는 그 자신의 삶이 모범이 되지 못한 종교 브로커였다. 그는 자신의 설교에서 연옥의 형벌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면죄부의 효능을 다음같이 설명하였다: “동전이 돈 궤 속에서 짤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연옥으로부터 튀어 오릅니다.”

3. 오늘날 한국교회에의 적용: 회개는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삶의 변화로 결실되어야 한다. 

회개는 한번이 아니라 일평생 지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루터의 고해성사 비판과 형식적 회개에 대한 비판을 오늘날 한국교회에 적용한다면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시행되고 있는 회개의 비성경적 경향은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루터는 자신의 정욕을 신체적으로 쳐서 복종시키고 죽이지 못한다면 그러한 회개는 무가치하다고 보았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회개란 한편으로는 너무 감정적인 것으로 표출되거나 아니면 내면의 진정한 회심없이 그냥 부흥사가 외치는 외적인 말씀에 호응하여 단지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눈물을 흘리거나 죄를 토로하였다고 자신이 회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감정적 회개에 치우치는 것이다. 회개에는 진정한 마음의 결단과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루터는 회개란 “신자들의 전 생애에서 회개가 지속되기를 원하셨다”(1조항). 처음 신앙생활 시작할 때에 한번 믿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회개란 전 생애를 통관하여 수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 신자들이 놓치는 부분이다. 예배 중에서는 회개를 잘하고 사경회에서는 회개를 잘하는 데 일상생활에서는 회개의 삶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늘날 한국교회 신자들에게는 주일 예배와 교회에서의 삶과 언행이 가정과 직장에서의 삶과 언행이 일치되어야 한다. 철저히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mortification) 새사람이 다시 사는(vivification) 성화의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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