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신㊱ 북한식 망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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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통신㊱ 북한식 망년회
  • 김창범 목사
  • 승인 2016.12.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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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 목사/더미션로드 대표

탈북한 노인들과 노래방을 간 일이 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무룩했던 그들이 환호하며 춤추던 모습을 보며 우리 민족의 바닥 정서는 남이나 북이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북한의 망년회는 조금은 특별하다. 일 년 내내 당의 지시에 따라서만 살아온 북한 사람들이 모처럼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름 마음을 열고 노래하고 춤추는 자리가 있기에 모두들 이 시간을 기다린다. 이런 연유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평양이나 큰 도시들은 연말이 되면 들뜬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망년회 모임은 북한사회에서 하나의 전통문화인 셈이다. 망년회는 주로 각자가 속한 사회단체가 맡는다는 점에서 직장 단위의 모임을 가정까지 들여온 연말 행사로 생각된다. 가정주부들은 그들의 조직인 여맹(여성동맹)을 중심으로, 남자들은 직장 조직인 직맹(직업동맹)을 중심하여, 또 청년들은 사로청(사회노동자청년동맹)을 중심으로 한 해를 보내는 모임을 갖는다. 이들로 연말이면 골목마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조용한 남한의 주택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가끔 당 비서, 조직비서, 세포비서 등이 참여해 딱딱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일반 모임과 다른 점은 음식이 있고 노래와 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모임을 가질 때는 참석자들이 조금씩 할당된 자기 몫을 지참한다. 흔히 3백 내지는 5백 그람의 쌀이나 술과 고기를 가져온다. 주된 음식은 멀건 돼지고기 국이고 운이 좋으면 입쌀밥이 준비된다. 반찬이라곤 백김치가 전부다. 당과 수령에 대한 찬사를 앞세워 시작되는 이 모임은 재담과 노래로 떠들썩해진다. 물위에 띄운 바가지를 두드리며 흥을 돋우면 좌중은 화색이 돈다. 돌아가며 노래와 얘기가 쏟아진다. 속 깊은 얘기는 나눌 수 없지만, 마음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자리가 된다. 그래서 모두들 좋아한다.

그러나 북한의 망년회는 이삼일에 한 번씩 해온 생활총화의 한 해 최종판으로 생각하면 된다. 참석자들은 당과 수령을 섬겨온 자기 나름의 반성과 각오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술기운이 돌기는 하지만, 저마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어느 자리나 보위부 끄나풀들이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함께 부르는 노래란 것이 남한의 트로트 식의 가요가 아니라, 김일성 찬가나 혁명과 전투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모임의 마무리에는 반드시 충성 맹세가 등장하고 만세와 박수로 끝낸다. 이것이 그나마 저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기회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마다 한 해를 보내는 감회나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감 같은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란 것이 있기 마련인데, 북한에서는 이마저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망년회는 사적인 자리이지만, 개인의 의견이나 감정을 사사롭게 교류할 기회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당의 철저한 방침이다. 그래서 탈북자들에게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나 각오를 물어보면 당황해 한다. 사적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과 수령을 위한 집단만 인정되고 개인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의 생각이나 자유를 철저하게 말살한 사회가 북한이다. 집단화된 문화 속에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그 잔인한 문화형태가 바로 인민재판이다. 물론 망년회와 인민재판은 전혀 다른 양식이지만, 개인감정을 집단화 시켰다는 점에서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 마치 바벨탑을 쌓아가는 인간 집단의 범죄를 보는 것 같다. 개인의 심령 속에 자리한 하나님의 영을 끝까지 말살하려는 악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소박한 망년회 자리까지 잠입한 악의 세력을 보며 주님의 도우심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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