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문화의 우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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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문화의 우월성
  • 정성학 목사
  • 승인 2016.12.2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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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학 목사의 섬 목회 이야기(20)

제주도에 사는 지 25년이 되니까 제주도에 대하여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웬만한 것은 보고 들은 풍월에서도 아주 뒤지지는 않습니다. 이곳에 살면서 보고 듣고 부대끼며 느낀 생각 중에는 저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처음에는 문명의 충돌 같은 거부감과 당혹감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공감하게 됩니다. 이제는 그 가치를 인정하여 보존하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만, 역으로 이 아름다운 문화들은 육지 문화에 가려져서 인지, 다수의 비판 때문인지 위축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하루에도 비행기만 수백 편이 왕래하는 번화한 섬이 아니라, 오로지 바다로만 왕래가 가능하던 외딴 섬 제주도였습니다. 그래서 국법의 심판을 받은 중죄인들이 더 이상 도모를 꾀하지 못하도록 최고의 유배지로 꼽히던 제주도이니 아무래도 긴 세월 동안 육지와는 사뭇 다른 문화가 자리 매김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섬 사람들의 생존의 법칙이었고 공동체를 엮어 주는 든든한 끈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문화는 단순히 생존을 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육지에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합리적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조 문화입니다. 이는 얼핏 들으면 상당히 거부감도 있고 촌스럽거나 무지해 보이지만, 이만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는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큰 일, 즉 관혼상제를 당할 때에 이웃끼리 십시일반 작은 성의를 보태서 큰 일을 치르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어느 지역이나 있는 부조 문화는 각자의 형편대로 여유가 있는 이는 조금 많이 내고, 형편이 어려운 이는 조금 내어 큰 일을 치르는 이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아름다운 정신에서 생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미풍양속 중의 하나인데, 이곳에도 있습니다.

다만 제주도의 문화에서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겹부조’라는 것입니다. 이중 부조인 셈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아는 분이 상을 당해 문상을 갔습니다. 가보니 형제들을 다 아는 것입니다. 둘째와는 동창이고 형은 각별한 선배이고 동생은 아끼는 후배입니다. 그 때 부조 봉투 세 개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큰 아들, 작은 아들, 막내 아들에게 하나씩 주는 것입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는 분들은 ‘그럼 그 많은 부조를 어떻게 감당하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축의금이나 부의금의 액수를 조정하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사회활동을 많이 했거나 사람을 좋아해서 사방에 다니며 부조를 많이 낸 아들은 당연히 지인들이 낸 부조도 많을 것이고, 자기만 알고 누가 어려움을 당해도 얼굴 한 번 안 내민 형제에게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부조도 적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가의 경우 각자가 공동의 경비를 나누어 내고, 나머지는 자기가 받은 대로 자기 몫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합리적 부조 제도입니다. 그러면 형제 간의 갈등이나 다툼이 날 일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외지인들의 눈으로 자꾸 비판하다 보니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정성학 목사 / 제주 기적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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