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기 때문에 겪는 차별, 주님의 사랑으로 위로 전해요
상태바
다르기 때문에 겪는 차별, 주님의 사랑으로 위로 전해요
  • 김성해 기자
  • 승인 2016.12.21 15: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탄 르포 // 이주민들 자립을 돕는 사단법인 올프렌즈

추운 겨울이다. 사람들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피하기 위해 저마다 손과 발, 얼굴을 꽁꽁 싸맨 채 거리를 걸어간다. 걷다 보면 마주치는 외국인도 많아졌다. 그들 역시 매서운 한국의 추위에 적응하기 어려운지 몸을 웅크린 채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이주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들의 삶을 듣고자, 다문화 이주민들을 섬기는 ‘올프렌즈’를 찾아가 보았다.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이 동네 거리를 돌아다녀보면 ‘이주민들의 동네’라고 해도 무색할만큼 수많은 외국인들이 보였다. 근처 대형 마트와 편의점, 버스정류장까지 이주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 길을 벗어나 하천 위 다리와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추위 탓인지 골목에서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굴다리를 지나 5분가량 걸어가자 ‘올프렌즈’ 센터 건물을 볼 수 있었다.  
 

▲ 2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도르가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 차별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겪은 차별
센터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자, 베트남 어린이들이 해맑게 웃으면서 성탄 트리 주변을 뛰어놀고 있었다. 그 옆에는 혹여 아이들이 다치진 않을까 자리를 지키는 한 베트남 여성이 있었다. 여성의 이름은 희엔으로, 아이들 중 붉은 색 원피스를 입은 도르가의 엄마였다. 

올해 6살인 도르가는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약 2년 전 도르가의 아버지는 신학 공부를 위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도르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국으로 입국했고, 근처 어린이집을 다니게 됐다.

도르가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많았지만 한국 어린이들도 많았다. 도르가는 또래 한국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희엔은 당시 아이가 집에 오면 울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르가가 어린이집에서 어울리던 친구 2명이 있었어요. 둘 다 한국 어린이인데, 그 중 한 명인 미나(가명)는 키도 크고 힘도 쎄요.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부터 도르가를 괴롭힌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과 도르가는 다르게 생겼다고 놀리고, 도르가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기도 하고 따돌리곤 했어요.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도 얘기 해봤지만 선생님과 제가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었죠. 그래도 요즘에는 잘 다니고 있어서 다행이지요.”


희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르가를 쳐다봤다. 비록 체구는 작았지만 같은 베트남 친구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 해맑게 웃고 뛰어놀고 있는 도르가였다. 희엔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도르가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슬며시 다가가 말을 걸자, 도르가는 해맑게 “왜요? 내가 예뻐서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그 모습이 참 천진난만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심지어 도르가는 엄마인 희엔보다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한국어를 말했다. 의자에 앉은 도르가에게 조심스럽게 요즘은 괴롭히는 아이들이 없는지 물어봤다. 


“미나랑, 민지(가명)랑 저랑 셋이 친구였어요. 그런데 어린이집 다닌 지 얼마 안돼서 미나가 저를 괴롭혔어요. 제가 듣기 싫어하는 말들을 해서 속상하게 하고, 저를 막 깨물었어요. 그래서 어린이집에 가기가 싫었어요. 담임선생님이 미나한테 괴롭히지 말라고 한 뒤로 더 이상 미나는 절 안 괴롭혀요. 그런데 요즘은 민지가 또 저를 괴롭히기 시작해서 힘들어요.”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면서 한숨을 쉬는 도르가가 귀엽기도 하면서 안쓰러웠다. 이 작은 아이가 낯선 땅에서 외로움을 겪었고, 지금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는 이주민들. 올프렌즈는 이들의 자립을 위해 한국어 교육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지도하며 보살피고 있다.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
한국으로 입국한 뒤 외로움을 겪고 있는 이는 도르가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입국한지 약 4년 정도 지난 곤완나는 캄보디아 사람이다. 5남매 중 셋째인 그는 캄보디아에서 원인 모를 질병을 앓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그는 허리의 통증을 호소했고, 왼쪽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 그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돈을 벌기 위해 그 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 


“한국에 오고 나서 지금 일하고 있는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됐고, 그 곳에서 숙식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치료도 못 받았던 제 몸은 한국에 와서도 아프기 시작했어요. 너무 아픈데, 머나 먼 타국에서 아픈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몸이 아프니까 어머니랑 제 형제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전부 캄보디아에 있었어요. 아프다고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죠. 단순히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나는 너무 아픈데 내 아픔을 아는 이도, 아픈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 나 홀로 있다는 사실이 더 힘들었어요.”


아픈 몸을 치료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곤완나. 진료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곤완나는 당시 한국말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병명을 기억하진 못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병원비는 턱없이 비싸기만 했다.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진료를 받았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저보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수술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수술비가 그때 당시 천만 원이라고 했는데, 제가 번 돈들은 캄보디아 가족들에게 보내주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곤완나가 일하고 있는 공장의 사장이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고 수술비를 대신 지불해서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곤완나를 간병해줄 수 있는 가족은 없었다. 

외로운 이들의 안식처
따돌림을 당했던 도르가와 한국말이 서툴러 아이의 상황을 선생님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희엔, 한국에 아는 이가 하나도 없어 외로웠던 곤완나. 이들에게 안식처가 돼준 곳은 다름 아닌 ‘올프렌즈’였다. 

올프렌즈에는 여러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이들이 60여명이 된다. 자원봉사자들은 한국말이 서툴러서, 따돌림을 당하는 도르가의 처지를 어린이집 교사에게 명확하게 전달해 주었으며, 수술 받은 곤완나가 퇴원할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찾아가 그가 외롭지 않게 돌봐줬다.

올프렌즈를 운영하는 윤성구 대표는 센터에 있는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외롭지 않고, 한국어를 모름으로 인해 무시 받거나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임을 밝혔다.

“이주민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소통입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이 어렵고, 그러다 보면 불이익을 겪거나 취업하는 길도 더욱 어렵거든요. 더군다나 한국에서도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사람, 일을 좀 더 잘하는 사람을 고용하려고 하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이 친구들을 전문성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윤 대표는 이들을 위해 한국어 교실을 만들었다. 전문성 있게 가르치기 위해 기초반, 고급반으로 나눴고, 또 국가별로 반을 나눠서, 이주민들이 좀 더 수월하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은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이주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 역시 자원봉사자들이라는 소식은 기자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었다. 

올프렌즈에서 3년째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최춘애 집사(분당이우교회)는 중학교 국어 교사였다. 동생의 소개로 센터를 알게 된 최 집사는 지난해 8월 교사직을 퇴직했다. 이후 최 집사는 더욱 열정적으로 이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점점 그들에게 애정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글만 가르치려는, 재능을 기부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센터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서른 살 가까이 된 이주민 친구 한 명이 대뜸 저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안기더라고요.

그 순간 고향과는 먼 한국에서 얼마나 외로웠으면 나를 엄마라고 부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 이주민 친구들이 제 마음속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아마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으로 이주민 친구들을 보게 하신 계기를 주신 게 아닌가 싶었어요. 지금은 이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집니다.”

▲ 비영리단체 올프렌즈는 이주민들의 고충을 해소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단체이다.

이주민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올프렌즈는 비영리법인 단체이지만, 이 곳을 찾은 이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센터는 토요일과 주일로 나눠서 찬양하며 예배를 드린다.

주로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은 일요일에 쉴 수 없어서 토요일 늦은 저녁 시간에, 주일은 국가별로 나눠서 베트남은 오전, 캄보디아는 오후에 예배 드리는 시간을 가진다. 윤성구 대표는 올프렌즈가 비록 종교 단체는 아니지만 복음 사역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음을 밝혔다. 


“비영리법인 단체이기 때문에 대놓고 이주민들에게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이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만 복음을 이야기 해주고 있어요. 또 저희가 직접 전도하기보단 이주민 친구들이 복음을 듣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서 또 다른 이주민에게 전도합니다. 복음이 전도가 되고, 또 전도가 전도로 이어지니 감사하죠.”

현재 올프렌즈는 이주민들과 함께 성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매년 성탄절이 되면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맺게 된 가족 및 지인, 이들을 후원하는 후원자들까지 모여 예배를 드리고 친교의 시간을 가진다. 이주민들에게 성탄절은 즐겁고 시끌벅적하면서도 특별한 날이다. 

캄보디아 사람 짠은 성탄절이 매우 기다려진다고 밝혔다. 그는 “성탄절이 되면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캄보디아 친구들 등 많은 사람들, 특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도 센터로 찾아와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한다”며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씀을 모른다. 그러나 성탄절에는 복음 되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그들에게 거부감 없이 전할 수 있는 날이어서 더욱 감사하다”고 말했다. 

성탄절을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짠의 말을 듣자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먼 타국으로 떠나와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이주민들. 2016년 성탄절에는 예수님의 참사랑으로 따뜻한 위로가 더해지길 소망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