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대강절에서 성탄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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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대강절에서 성탄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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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0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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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으로 강산을 물들이던 가을은 어느 덧 가고, 설악산 대청봉에 눈이 내렸단다. 동해 앞바다 파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쉬지 않고 우리에게 희망을 손짓한다. 시절의 속절없음은 파도의 끈질긴 구애에 그만 줄행랑친다. 희망이 절망보다 강한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출렁이기 때문이다.

경제지표가 낮아지고, 내년도 성장률이 떨어진다 하고, 청년 실업 문제는 쉽사리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게다가 얼마 전에 최순실 게이트가 열리더니, 설상가상 정계, 재계, 문화-체육계, 학교에까지 그 보이지 않는 음흉한 손이 미치지 않았던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동안 정의와 공의를 앞세워 경제 정의, 정치 정의, 분배 정의 등을 외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정권 뒤에서 많이 해드셨던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름하여 비선실세.

비선실세는 해괴망칙한 힘을 자랑했다. 귀신처럼 몸통은 보이지 않는데, 무슨 문고리 3인방이니, 십상시니 하는 별명으로 정말 천하에 그 괴력을 자랑했나 보다. 푸른기와집 수석들이 선생님으로 모시지를 않았나, 그분께 확인했느냐고 반문하지 않던가, 심지어 대통령 연설문에 빨간펜으로 밑줄을 그었다니, 그분은 정말 그토록 전문 정치식견과 민정을 두루 살피는 통찰력을 겸비한 것인가. 만약 그러했다면 왜 여태 초야에 묻혀 살아오셨을까. 진작 정계에 나서서 국정을 살피셔야 옳지 않았던가.

백성들은 보다 못해 하나 둘 촛불을 켜들기 시작했다. 세월호 희생가족들이 청와대 접근하는데 2년여 세월 걸렸단다. 억울한 사연 탄원하겠다는 백성을 물리치는 냉정은 어디서 배운 것인지. 그것도 정치적 정의란 말인가. 이제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으니, 촛불이 횃불되고, 횃불이 들불이 되어, 정의와 공의가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이 땅을 적시길 기대한다.

촛불, 이제 촛불을 켤 때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성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작고 연약한 촛불처럼 보이지만, 어둠을 밝혀 진리와 은혜를 드러내는 구원의 빛이다. 그 빛이 환하게 켜지는 계절이다. 대강절(혹 대림절, 강림절, Advent)이 깊어간다. 촛불이 하나 둘 셋, 네 개가 모두 켜지면 성탄절을 맞는다.

세상은 제 각각 살아가는 일에 분주하고, 시끄럽게 소란스럽지만, 이 세상을 구원할 복된 역사는 세상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다가온다. 하나님의 역사, 사랑의 역사, 구원의 역사는 그렇게 세상에 주어졌다. 세상은 오늘도 퇴진, 하야, 탄핵으로 시끄럽지만 다른 한쪽에 마음을 기울여보자. 자괴감, 낙망은 어둠에 묻어 버리고, 이제 절대 정의로 오시는 구주 예수님을 맞이하러 촛불을 들고 나서자. 성탄의 기쁜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니 어찌 아니 기쁘지 아니한가. 촛불 든 자들은 복 있으리니, 정의의 품에 안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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