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독교 역사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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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독교 역사 개관
  • 황의봉 목사(평안교회)
  • 승인 2016.12.0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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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중세교회사 들어가기(2)

교회사학자 라은성 교수는 중세교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주제들을 기억하면 된다고 강조합니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교황제도’ 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세 개의 소주제가 있는데 ‘수 도원운동’ ‘십자군운동’ 그리고 ‘스콜라철학’입니다. 이러한 주제들의 배경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인데 이를 도표로 만들면 이렇게 됩니다.

교황제도의 시작, 발전, 성장, 절정, 쇠퇴, 그리고 몰락은 ‘세 개의 주 제들’과 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즉 수도원운동이 쇠퇴하면 교황 제도도 쇠퇴하고 그 운동이 몰락하면 교황제도도 몰락합니다. 또 스콜라철학이 절정에 이르면 곧 교황제도도 최고의 절정에 이르고 그 철학 이 시작하면 교황제도도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교황제도의 시작과 몰락은 약 200년 단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작과 발전(7-9세기), 성장(10-11세기), 절정(12-13세기), 쇠퇴와 몰락(14-15세기)입니다. 이것이 중세교회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이들은 종교개혁이 로마 가톨릭에서 나왔다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억지주장을 펴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또는 종교 개혁으로 일어난 ‘프로테스탄트들’이 ‘로마 가톨릭의 사촌’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분명히 말해드리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중세교회사를 배우면서 밝혀 나갈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중세교회사를 공부하는 가장 주요한 목표들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로마 가톨릭이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고 이탈했다는 것이고 진리를 숨기거나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 이탈의 기간이 약 1,000년이나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이 1,000년 동 안의 이탈된 교회사를 ‘정통신앙’(orthodox)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어긋나지 못하도록 기독교 신앙을 초대교회로 되돌렸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적이고 역사적 신앙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우리가 교회사를 연구할 때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기록한 역사들만 정사(正史)로 남아 있기에 그 시대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특히 중세교회 시대에는 많은 기록이 로마 가톨릭에 의해 기록 보존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칫 그들의 주장에 분별없이 따르기 쉽습니다. 이렇게 하면 초대교회사와 종교개혁 시대 사이에 중세교회사만 있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중간에는 ‘무명의 개혁자들’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들이 없어 우리들이 자세히 밝히지는 못하지만 간혹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이탈되지 않고 꾸준히 정통 기독교 신앙을 고수했던 분들을 중세교회사를 통해 만나볼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감격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개혁을 부르짖었던 무명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 무명(無名)의 개혁자들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무명의 개혁자들의 기록을 정말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간간히 그들 의 역사에 대해서 ‘이단’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의 ‘왈 도파’와 ‘알비파’, 국의 ‘롤라드’, 그리고 동방교회의 ‘보고’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시의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자라고 정죄 받고 핍박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정말 이단인지 정통인지는 역사가 증명 할 것입니다. 아무튼 그들에게 역사는 무명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가끔씩 나타나는 그분들의 신앙에서 종교개혁 신앙, 즉 정통신앙이 생존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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