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를 경외의 떨림으로 인도하는 '오르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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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를 경외의 떨림으로 인도하는 '오르겔'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6.11.23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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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파이프오르겔’ 제작자…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
▲ 국내 유일한 ‘파이프오르겔’ 제작자 홍성훈 대표는 파이프오르겔에 대해 “한계를 가진 인간의 귀로 하늘의 소리를 그나마 들을 수 있는 악기”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파이프오르겔’을 제작하는 사람이 있다. ‘오르겔바우’ 홍성훈 대표(새사람교회 출석)다. ‘오르겔’은 오르간의 독일 말이다. ‘바우’는 건축이란 뜻. 그는 오르겔 ‘건축자’다. 

파이프오르겔은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한다. 오르겔을 만들다 30미터 높이에서 파이프와 함께 떨어진 적도 있다 하니, 악기를 건축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 거대한 사이즈에 나무와 금속, 유리와 같은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전자 컴퓨터 시스템에 최첨단 아이티 기술까지 접목된다.

그래서 파이프오르겔을 ‘악기의 왕’이라고 한다. 그 통 속에 수많은 악기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일하게 진화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다른 악기들과 달리, 오르겔은 현대 문명의 발전된 기술과 디자인의 혁신이 계속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를 망치는 악기도
지난 1998년, 독일에서 마이스터 자격을 얻고 한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성공회 대성당 지하 소성당 오르겔을 제작한 후의 소감을 그는 최근 발행된 ‘천상의 소리를 짓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밝힌다.

‘무형의 공기가 수백 개의 파이프를 타고 들어와 천상의 하모니로 다시 태어나는 그 놀라운 순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이토록 아름다운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를 만들게 하시다니…. 오르겔 소리에 감동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또 한 번 감격해 예배당 뒤편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나, 생명력 있는 소리로 그분을 찬양하는 오르겔을 만들리라.’

“파이프오르겔이 예배를 위한 유일한 악기”라고 말하는 그는 “한계를 가진 인간의 귀로 하늘의 소리를 그나마 들을 수 있는 악기”라고 표현한다. 음의 폭이 광대하여 들을 수 없는 소리까지 만든다. 이것은 육성을 넘어선 영적인 소리다. 

수많은 파이프들이 공기를 진동시켜야 하니 음악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 거룩한 파장은 예배자를 경외의 떨림 속으로 인도한다. 파이프오르겔 제작이 어렵고 비싸기 때문에 미국 쪽에서 전자오르간을 만들었지만, 그건 마치 피아노와 키보드 소리가 다르듯 비교조차 될 수가 없다. 

“유럽에선 교회에 피아노가 없습니다. 피아노는 세상적인 악기죠. 사람의 감성에 의해서 쳐지는 악기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위한 악기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드럼 같은 것을 요즘에 교회에서 많이 치는데, 그건 예배를 오히려 파괴시킬 수 있는 악기입니다.

파이프오르겔은 음악이 공격적이지 않고 편안합니다. 원래 있는데 다만 듣지 못했던 소리, 자연음을 들려줍니다. 그 공명을 통해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우리에게 줍니다.”


한 친구는 그를 ‘럭비공’에 비유했다. 그런 면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일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한숨을 쉬면서도 오르겔 제작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흥사단에서 봉산탈춤, 대금, 무용, 클래식 기타 등의 활동을 했던 그는 돌연 26세의 나이 때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개척교회의 오르겔
“제가 성격상 어떤 직장이나 조직체에 오래 못 있어요. 독일에 마침 신학을 하던 여동생이 있어서 뭘 하러 갔다기보다는 돌파구를 찾아 간 거죠. 제가 살던 동네에 마침 오르겔 장인이 있었고 그 아래서 도제생활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1987년부터 1년간 목공 트락티쿰과 4년여의 오르겔바우 도제 과정 거쳐, 1991년 오르겔바우 국가시험에 합격한 그는 세계적인 오르겔바우 명가인 요하네스 클라이스 오르겔바우 회사에 입사해 경력을 쌓았고 오르겔바우마이스터슐례에 입학, 1997년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국가시험에 합격해 마이스터가 됐다.

“첨엔 무척 힘들었죠. 한국에서 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데, 대패질 하려면 무거운 나무부터 꺼내 와야 하고, 그 나무를 무서운 기계에 넣고 자르고, 하루 종일 서서 노동을 하는 겁니다. 또 나무 하나 선택부터 첨단 전자기기까지 관련을 해야 하니, 생각이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처음에 거기서 배울 때는 또 독일 말과 문화에 서툴러서 왕따 같은 어려움도 많이 겪었어요.”

그 고난을 뚫고 획득한 마이스터 자격증을 가지고 늘 꿈꿔왔던 대로, 자랑스럽게 귀국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그의 발 앞엔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딱 IMF 때에 귀국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르겔이 낯설어 대중화되지 않았던 한국에서 경제적인 한파까지 겹쳐 어려운 시절을 견뎌야 했다. 

진로에 대한 갈등이 시작됐다. 한국에 마이스터 자격자가 서넛 있었는데, 다들 딜러로 일을 했다. 그 역시 제작할 마음이 없었다. 딜러가 되어 영업을 했지만 그쪽으론 영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갑갑하게 여겼을 즈음에, 한 개척교회 목사님이 그에게 오르겔 제작을 의뢰했다.

“건물도 없이 의자만 20여개 있는 임시 막사교회였는데요, 오르겔을 제작해달라고 부탁해주셨어요. 그것이 제 작품번호 3번이죠. 그땐 제작실도 없어서 목공소를 빌려서 제작했어요. 기억할만한 작품이죠.”

독일 말로 ‘베루펜’이란 단어가 있다.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이란 뜻이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그를 계속 몰아가셨다. 독일에 가서 오르겔을 배우게 된 것도, 귀국해서 편안한 딜러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그러나 그 가치와 의미에 있어서 하늘과 땅차이인 제작자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며 두 번 정도 신용불량자가 된 것 같아요. 집에 한 번도 월급을 가져다 준 적도 없죠.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늘 힘이 들고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프로젝트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16대를 만들었네요. 기적 같고 감사한 일이죠.”

외국에 비하면 짧은 한국의 오르겔 역사. 현재 전국에 200여대가 있다고 한다. 그 동안은 거의 외국에서 제작 수입했다. 그러나 그가 제작하면서 그 외관과 내용에서 한국의 정서와 역사가 배인 작품들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전통의 뒤주를 모티프로 해서 제작하기도 하고 ‘산수화 오르겔’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에서 ‘자동차’를 만들면서 자동차 문화가 생겨났듯이 그의 제작을 통해 한국의 오르겔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우길 그는 기도하고 있다.

“외국 오르겔 회사에 비해서 저희 역사가 짧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족한 게 있겠지만 그러나 항상 최고를 지향하며 제작합니다. 제가 사야할 모터라든가 부품들을 세계 최고의 외국 회사들과 거래하고요, 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지의 최고의 장인들이 저를 도우며 제 프로젝트에 동참해주고 있어요. 외국에 비해서 한국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30% 정도 가격이 저렴합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제작한 오르겔에 대해서 다들 만족해하셔서 감사하죠.”

최근 그는 양평 청란교회에 작은 오르겔을 제작했다. 마치 계란처럼 생긴 교회에 한 가족이 딱 들어갈 수 있는 상징적인 교회인데, 그곳에 금색 격자 창틀에 십자가 모양의 산딸나무 꽃을 박아 예쁜 오르겔을 만들었다.

작은 교회라도 파이프오르겔로 예배드리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마이스터 홍성운 씨에게 연락을 해보시라(hong-orgel.com, 031-775-2507).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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