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을 위한 ‘연합’ 심지어 이단과도 손잡아 … 신앙과 이념 구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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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을 위한 ‘연합’ 심지어 이단과도 손잡아 … 신앙과 이념 구분해야
  • 이현주·이인창 기자
  • 승인 2016.11.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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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로 본 한국교회 개혁과제…①신앙보다 이념 앞세운 한국교회
▲ 공산화 확산에 대한 불안감으로 1975년에는 교계 전반적으로 ‘구국기도회’가 많이 개최됐다. 사진은 당시 기독교매체에 보도된 ‘구국기도회’ 기사.

최순실 국정농단을 둘러싼 파장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 가치를 크게 훼손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불리고 있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권력을 사적으로 좌지우지한 것이 검찰조사를 통해 하나씩 확인되고 있고, 국정 전반에 만연해 있던 부정과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중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민낯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진보와 보수 할 것이 교단과 단체들은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시국기도회를 개최하며,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를 지키지 못했다고 회개하고 있다. 물론 명확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참회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가 개혁돼야 할 과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본지에서는 최순실 사태를 통해 바라본 한국교회의 개혁과제를 점검하면서 신앙보다 앞선 이념의 문제를 먼저 짚어본다. 

최태민과 기독교 연결점은 ‘반공’
이번 사건의 출발점은 1994년 사망한 최태민이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됐다. 최태민은 최순실의 부친이면서 1970년대부터 정권 혹은 대통령의 가족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왔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난 초반부터 사람들은 최태민이 가졌던 ‘목사’라는 호칭에 관심이 많았다.

엄밀히 말하는 그는 목사가 아니라 ‘영세교’라는 신흥종교를 만든 교주였다. 측근이라 주장하는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목사직을 매매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한때는 승려였고, 천주교 청년단체 핵심인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유사종교 인사를, 한 때 기성교회가 수용했던 역사를 반추해봐야 한국교회 개혁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이 목사로 둔갑한 이유는 ‘목사’ 직함이 그의 사업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는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부흥하고 있었다. 여기에 그가 내세우는 ‘멸공’ 기치를 가장 쉽게 흡수하는 조직이 바로 ‘기독교’였다. 즉, 최태민이 활발하게 정권에 접근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가치는 바로 ‘멸공’, 즉 반공주의였다.


최태민이 ‘구국선교단’과 ‘구국십자군’을 창설하던 1975년은 북한의 ‘제2 남침설’과 ‘반공사상’이 극대화 되던 시기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사상이 남쪽으로 내려오던 시기로 역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1975년 일어난 인도차이나 사태는 자유 대한민국에 ‘반공’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몰아가고 있었다. 1964년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 이후 1975년 미국의 패배는 베트남을 사회주의국가로 만들었다. 당시 한국교회는 인도차이나 사태를 바라보면서 진보와 보수할 것 없이 17개 교단이 참여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만들었다. 


구세군대한본영, 기감, 통합, 복음교회, 고신, 성공회 등 17개 교단은 “최근 인도차이나에 있어서의 사태와 거기에 따른 전 아시아에 있어서의 공산주의의 위협을 의식하며 또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무모한 남침 위협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 사태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인다”며 “이같은 긴박한 사태 하에서 한국교회가 취할 태도가 어떤 것인가 전 국민 앞에 결의를 밝힐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성명을 냈다.

그 첫 항은 공산주의 반대였고, 공산주의 침략을 대항하는 큰 과제 앞에 하나가 될 것을 다짐했으며, 승공의 길이 공산주의자와의 직접적인 투쟁뿐만 아니라 자체 안에서의 부조리, 즉 부정, 부패, 불신을 일소하고 서로 신뢰하고 돕는 결속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반공과 승공을 위해서라면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이 시기, 북한 김일성은 중국을 방문해 제2의 남침을 계획하고 있다며 파병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진 바 있다. 한마디로 북한의 침략과 베트남의 공산화,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의 충격 등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때 최태민이 만든 구국선교단은 기독교계 반공인사들을 끌어들이기에 적합했다. 최태민은 멸공을 기치로 한국교회에 접근했고 대대적인 창군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최근 구국선교단 창설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준 기독교계 인사는 새문안교회 담임이었던 강신명 목사다. 강 목사가 속한 예장 통합 교단은 구국선교단 창설 후 최태민과 관련단체에 대한 경각심을 요청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 목사의 동참은 이단을 넘어 ‘반공 이데올로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가능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1975년, 공산화 불안감 확산되던 때
구국선교단이 창설되던 1975년 4월 강신명 목사는 “신앙운동을 반공으로 승화시키자”는 내용의 시국선언에 나섰다.

강 목사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나라 사랑하는 영원한 복음화를 위해 초교파적으로 새로운 반공태세 확립을 위한 전 기독자 반공궐기를 재창한다”며 “우리나라 선교 1백년사에 결정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직시하면서 목사직 40년을 통해 본 일단의 소신을 밝힌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의 중공방문과 인도차이나 사태에 대한 공산화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사회를 팽배하게 둘러싸고 있던 반공주의가 기독교계의 반공신앙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고 최태민의 사업에 꼭 필요한 ‘멸공’ 기치를 한국교회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구국십자군 창군 취지에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구국십자군의 창군 취지 및 목적을 보면 “세계 역사는 격동하고 있어 어제 이웃이었던 크메르와 월남이 볼온세력에 먹혀버린 참담한 양상이 오늘의 현실이며, 우리나라의 정세도 북괴의 불온군대가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송두리째 앗아가려고...”라고 밝히고 있다.

또 제일 첫 번째 목적에 대해 “승공의 유일한 길은 신앙으로 통일된 정신무장의 길임을 깊이 깨달아 전국 복음화운동에 앞장선다”였다. 강신명 목사의 시국선언, 그리고 17개 교단의 반공 성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사실 교회가 이데올로기 논리에 휘둘렸던 역사는 한국교회 역사에서도 비극이 됐던 경우가 많다. 선교 초기 기독교의 부흥은 38선 이북 즉, 북한지역에서 주를 이뤘다. 그러나 해방 후 공산주의가 확산되면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기독교는 월남을 택했고, 북한에서 인민군에 의한 학살과 재산 몰수 등을 경험했다. 당연히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그의 저서 ‘대한민국은 왜’를 통해 “공산당과 싸우다 월남한 이력은 반공국가가 된 남한 어디서나 통하는 보증수표였다”며 “월남자(기독교인)들은 한국정치, 사회에서 반공의 이름을 내건 공권력의 폭력, 기독교 보수주의, 수사, 사찰기관의 범법과 월권, 친미 이데올로기가 정착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교수는 또 “한국 기독교에서 극우 반공주의가 거의 신앙처럼 자리 잡자, 교회에 나가거나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은 반공주의의 징표, 즉 신원을 보증해주는 신분증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전쟁 후 한국인들 신비주의 쉽게 빠져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 사이비 종교가 늘어나게 된 배경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쟁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재산을 잃은 한국 사람들 다수가 기독교의 신비주의에 사로잡혔다”며 “전쟁 후 1950년대 전국 각지에서 사이비 종교 파동, 성령운동과 대부흥운동이 크게 일어난 것도 한국인들에게 기독 신앙적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타까운 점은 국제사회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에는 여전한 반공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고, 북한이 여전히 전쟁을 빌미로 핵무장을 시도하는 등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반공을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반공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정치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 역시 정치권력과의 영합을 위해 반공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터진 어버이연합 사태와 인터넷 댓글 부대 등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곳에 기독교 혹은 일부 교회나 선교단체가 언급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가 ‘반공’과 ‘정치’, ‘반공’과 ‘권력’을 구분해서 접근하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권력 유지 위한 반공 철저히 경계해야
물론 기독교의 국가관은 ‘나라사랑’에 근거하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일도 신앙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보수적 시각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예수님도 민족의 미래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고, 바울도 나라사랑이 지극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가 철저한 성경적 국가관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입각한 것이 아닌, 개인의 영달과 정치권력,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이념을 앞세운다면 그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도 맞지 않은 행동이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나 마찬가지다. 


크리스천아카데미 이근복 목사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종교가 권력과 야합하고,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수단화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또 권력에 대한 특혜도 기대할 수 있어 일부 목사들이 유혹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그러한 잘못된 풍토가 바로잡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석대 주도홍 교수(기독교통일학회 전 회장)는 “국가권력과 교회는 독자적 관계 속에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교회는 너무 이념적”이라면서 “교회의 모든 원리는 성경이고 복음에 근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주 교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한 마태복음 22장 말씀을 들면서 “예수님이 가라는 곳으로 가야지 정치논리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예수사랑교회 정완순 목사는 지난 13일 주일설교에서 “한국교회가 사람을 의지하고 탐심에 빠져 죄를 짓고 있다”며 “하나님만 의지하지 못하고 사람을 의지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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