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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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실상
  • 조성돈 교수
  • 승인 2016.11.1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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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시대가 어수선하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허탈해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고백을 했는데 아마 모든 국민들 역시 그런 마음일 것이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려고 당신을 찍었는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은 처음에는 분노였지만 이제는 허탈한 마음인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사기를 당하고 현실적인 피해도 피해지만 ‘내가 바보같이 이렇게 당했는가’하는 허탈함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런 자괴감에 빠져 있지 않았다. 무려 백만명의 사람이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나도 그 백만명에 한 사람이 되어 참여를 해 보니 상상을 초월한다. 백만이라는 인파가 어느 정도인가를 정말 실감할 수 있었다. 광장에 다리를 지탱할 수 있는 공간조차 얻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축제를 하는 것 같다. 풍자도 있고, 나눔도 있다. 분노를 가지고 폭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정의를 위해서 나설 수 있다는 자부심이 그들에게서 느껴졌다. 또 한 편으로는 이 역사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이게 살아있는 역사라고 가르쳐 주는 부모들에게서는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전하고자 하는, 그리고 자신이 그 선생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작은 모임에서 교우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설교를 위해서 택한 본문은 믿음 장으로 유명한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이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하는 말씀이다. 요즘 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묵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시절이 어수선한 때에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내 믿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 때 하나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비평을 감수해야 한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호칭 하나가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생각과 소신, 결국 나의 믿음이 그 사람들 앞에서 모두 드러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 글들은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 사이를 떠돈다. 과거와 같이 활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손쉽게 검색된다. 그런데 한 때가 아니라 영원토록 이 글들은 남아서 나의 믿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요즘 글을 쓴다는 것은 믿음의 심판대에 서는 것과 같다.

성경은 미래를 당겨서 사는, 믿는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당시 신앙인들은 모진 박해를 살고 있지만 믿음으로 바라는 것을 살아내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이 살고 보는 미래는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것이 미래를 보는 예언은 아니라고 본다. 점쟁이와 같이 좋은 미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박해를 견디어 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알았다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것이다. 사랑, 정의, 평화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을 이들은 굳건히 붙잡았다. 그리고 그 가치를 위해 오늘의 수고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았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바른 가치이고 의미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이, 정의의 하나님이, 평화의 하나님이 정해진 때에 이뤄가실 것을 믿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을 살아내는 것이고, 그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 나의 믿음은 정의가 가득한 세상, 사랑이 가득한 세상, 평화가 가득한 세상이 이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바른 가치이기에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이 글을 쓴다. 나의 믿음의 고백이 누구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격려가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분노가, 누구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겠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에 윤동주 시인의 고백처럼 모가지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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