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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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합니다
  • 류춘배 목사
  • 승인 2016.11.1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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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배 목사·정남중앙교회

우리는 지금 그렇게도 기대하며 노래했던 21세기에 살고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속도전이다. 더 좋고 편리하고 나은 것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는 우선주의를 노래하고 있다.

교회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좋은 교회, 더 좋은 시설, 더 좋은 설교를 찾아 오늘도 예배의 쇼핑자가 늘고 있다. 국가는 대 혼란에 빠져있고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세계인이 놀라고 있다. 모두들 상처와 낙심뿐이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입학시험에서 권력과 돈 있는 자녀들에게 밀리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데 황금직장은 파업으로 연봉을 올리고 있다. 국민들은 실의에 빠졌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을 대표해서 행정부를 관리 감독하라고 권한을 쥐어준 야당은 국정감사와 대정부 질문을 통해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했단 말인가? 서민들은 그래도 야당에게 기대를 하고 약자를 대변해 주리라 믿어왔다. 그래서 여소야대를 만들어 주며 바르게 일하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국가가 이런 지경까지 추락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상상 밖의 상처를 입은 국민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고 지금 여당도, 야당도 똑같지 않은가? 열심히 공부해야 할 중·고등학생들까지 길거리로 나가야 하는가? 그러고도 야당인가? 지금 우리에게는 거국내각이니 2선 후퇴니 하는 구호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상실감에 빠진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로해 줄 그런 지도자를 갈망하고 바라고 있다. 그런데 소란하기만 하고 왜 위로하는 사람은 없을까?

지난 두 주간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를 검색해 봐도 마찬가지이다. 진정으로 아파하지도 위로하지도 용기를 주지도 희망을 주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위로 받고 싶다. 잘못했음을 지적하는 용기 있는 자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보듬어줄 그런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위로라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덮다, 감싸다, 품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놀랍게도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했는데 보혜사란 뜻이 위로라는 말이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상처를 받기에 주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이제 밖에서 안으로 눈을 돌려 보자. 교회는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일에는 고맙게도 열심이지만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다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봉사하지 않고 냉소적이다. 우리 부모세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다.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모습들이다.

목회자들은 어떠한가. 옆 작은 교회는 눈물을 흘리다가 더 흘릴게 없어 신음하는 중이다. 그런데 큰 교회는 대형교회를 꿈꾸며 좋은 시설과 환경으로 쓸어 담아버린다. 이 작은 한반도에 세계에서 손꼽은 대형교회가 몇 개가 있다는 말은 자랑이 아니라 아픔이다. 그 그림자 뒤에는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실의에 빠지며 아픈 상처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만을 탓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개인적인 견해라 매우 조심스럽지만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교회는 1,500석 건물과 3,000명이상의 교회는 만들지 않기로 결의했으면 좋겠다. 그나마 이웃 교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교회야말로 위로의 장소로서 권력과 돈의 한파에 떨고 있는 이웃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덮어주고, 부족함을 감싸주고, 소외되어지고 실의 빠진 자들을 품어주는 진정한 주님의 손길이 되어야 이 세상이 그래도 기댈 언덕이 있지 않겠는가. 정말이지 위로가 필요하다. 주님의 품이 필요한 시대에 위로의 사명을 멋있게 감당하는 교회들이 되어 나라의 빛과 소망이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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