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선지자’가 되고픈 젊은 예술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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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선지자’가 되고픈 젊은 예술가의 초상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6.11.09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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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를 작품화하다…크리스천 미술가 모준석 작가
▲ 현재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모준석 작가는 예술가는 선지자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미술가다. 어떻게 보면 채우고 만들기 보다는, 비우고 없애는 과정이 그만의 독특한 창작의 개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자기비움)’을 작품화하고 있는 그는 파리에서 더 깊은 신앙과 예술적 영감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예술가는 선지자와 같다고 생각하는 젊은 미술가가 있다. 모준석 작가는 성경 중 예언서를 즐겨 읽으며 영감을 얻는데, 예술가는 ‘이 시대에 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화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삶 속에 적용된 성경말씀이 그의 작품으로 형상화되곤 했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았던 그는 대학 4년 내내 기숙사에서 4명이 함께 방을 썼다. 처음 만난 방 짝은 록음악 마니아였다. 그를 잠 못들게 했던 그 소란한 음악이 그 친구에겐 자장가였다. 또 다른 방 짝은 소리에 민감한 성악가라서 종이 한 장도 살금살금 놓아야 했다. 그런가 하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방에 구토를 해놓는 친구도 있었다.

‘나’를 비우면 ‘우리’는 커진다
“저와 전혀 다른 타자와 어울리면서 에베소서 2장 21절 말씀이 생각났어요. 건물마다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 간다고 했잖아요. 또 다른 곳에서 예수님께서 담을 허셨다고 하셨고요. 우리는 서로 담을 헐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그를 허용할 때에 성전이 되어가고 집이 되어간다는 걸 피부로 체험하게 됐죠.”

이런 신앙적 깨달음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추구하게 했다. 대개 속을 채우거나 그 겉모양을 빚어서 만드는 작품들과는 달리, 그의 작업은 속을 비워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똑같은 모양의 철로 된 선들이 그의 망치질에 이리 저리 패이면서 독특한 선들이 된다. 그 선들이 연결되어 방을 만들고 집을 이루지만, 담이 없다. 

“사람들이 제 작품을 좀 생소하게 보기도 해요. 설치예술가로, 조각가로, 심지어 공예가로 보기도 하죠. 한번은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에서 유력한 대상 후보였지만 도대체 이게 회화냐, 조각이냐, 뭐냐, 이런 논란 끝에 특선에 머물렀던 후일담도 있고요. 저는 제 작업을 ‘조소’라고 부르죠. ‘소조’는 붙여나가는 것이고, ‘조각’은 깎아나가는 것이라면, 저는 그것을 모두 합친 과정을 통해 작품을 만듭니다.”

처음 열었던 개인전시회 ‘너에게로 열어둠’에서 그는 ‘케노시스’(kenosis)를 표현했다. 빌립보서 2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곧 자기비움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비우심으로써 세상을 하나가 되게 한 사랑이다. 보통의 집들은 막혀있다. 집과 집은 서로 배타적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집들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집을 이룬다. 

“대학 기숙사 생활에서 느낀 게, 방은 다른 데 화장실 등은 함께 쓰죠. 내 공간이면서 모두의 공간이죠. 공존하려면 서로 담을 허물고 자기 생각과 욕심을 비워야죠. 내가 비울수록 우리의 공간은 더욱 커진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이제 서른 초반의 젊은 작가지만 그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 몇 년 전 국민대학교 대학원(입체미술전공) 졸업을 전후로 벌써 수많은 단체전시회는 물론, 개인전시회를 여러번 하고 각종 상들을 받은 프로필이 그의 재능이 만만치 않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대학을 들어갈 때만 해도 난감했던 시절이 있었다.

“성가대를 오래 하셨던 부모님이 제게 음악을 시키고 싶어 하셨지만 제가 대회에만 나가면 떨어지는 거예요. 뒤늦게 고2 때 미술 선생님 권유로 조각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등록금이 싼 서울대, 시립대, 그리고 마지막 실기시험 차례가 국민대였어요. 시립대에 붙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국민대 실기 때는 4시간 시험을 한 시간에 끝내고 나와 울산 촌놈이 서울 구경을 하고 다녔죠. 그런데 시립대에서 떨어진 겁니다. 정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매일 교회 지하실에서 울며 기도했죠. 절박했으니까요.”

▲ 파리에서 매일 매일 새롭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동행을 경험하고 모준석 작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냐
4시간짜리 작품을 한 시간에 끝내고 나갔던 그의 거만이 겸손으로 바뀌는 순간,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는지, 합격이었다. 입학 동기들은 80%가 예고 출신, 일반고를 나온 그에게 합격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전시회를 준비할 때에도,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했다. 첫 번 전시회는 충무아트홀에서 연 공모전에 대상을 탄 것이 계기가 되어 ‘너에게로 열어둠’이라는 전시회를 가졌다.

두 번째 전시회는 첫 번 전시회 때 온 선컨템포러리 관장이 제안했다. 2인전을 기획했는데 같이 할 분이 포기해서 두 번째 개인전이 됐다. 세 번째 전시회의 인연은 그가 특선으로 걸렸던 대한기독교미술대전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을 본 한국미술관 관장이 “이게 진짜 대상이다”라며, 그의 작품을 미술관에 걸겠다고 사가면서 시작됐다.


“정말 저는 개인전을 하려고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거든요. 스스로 개인전을 열려면 대관료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좋은 인연들이 계속 되어 일찍부터 개인전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 개인전을 준비할 때에 그의 ‘눈에 보이는 사실’들은 모두 문제투성이였다. 병든 아버지는 암2기, 어머니는 장결핵, 형은 미취업이었고, 그의 작업실은 월세가 3개월 치나 밀려있었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울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뜬금없이 하나님이 그에게 물으셨다.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그때는 하나님이 생뚱맞은 질문을 제게 던지셨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그 뜻을 알았죠. ‘네가 믿는 하나님이 이 문제 하나 해결 못해주실 하나님이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신기하게도요, 그 후로 모든 문제들이 잘 해결됐어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죠. 요즘 세상은 청년들에게 넌 스펙, 학벌, 집안, 돈이 부족하다며 무시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한 사람을 위해 죽으실 만큼 우리는 모두 귀중한 존재라는 겁니다.”

낯선 파리에서 만난 하나님
현재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재작년 아내와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함께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대미술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던 젊은 예술가에게 어떤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제대로 된 불어 한 문장 구사할 능력도 없이 떠난 구도의 여정에 당연히 많은 어려움들이 따랐다. 

“집도 못 구하고 해서, 여러 가지 문제로 답답하던 때였어요. 어학원 앞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멍하게 있는데 어디선가 ‘아떵(attends)’이라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어요. 보니까 어떤 엄마가 달려가는 아이에게 한 말인데요, 그 말이 제게 들렸어요.

며칠 전에 배운 프랑스 말이거든요. ‘기다려’라는 말이에요. 한국의 빠른 속도에 길들여있던 제게 프랑스의 느긋한 시간에 몸을 맡기라는 주님의 음성 같았어요. 그 후 저희에게 맞는 집도 찾게 됐고요. 이 경험은 믿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죠.”


어쩌면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낯선 곳에서의 시작이 예술 창작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언어가 서툴렀던 그는 오히려 벽을 느꼈다. 파리의 화려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칼로 자른 듯한 벽이 마음에 닿아왔다. 하도 예외가 많아서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사데뻥’이라 관용어가 있을 정도인 그곳에서, 그는 매일 매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 동안은 언어를 배우느라 바빴습니다, 지난여름에 한 작가 분이 작업실을 빌려주어 작품을 제작해서 단체전시에 참여할 수 있었고, 또 공모전에 지원한 걸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뜻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곳에서 미술이라는 도구로 이 시대를 어떻게 정직하게 조명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여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때에는 더욱 성숙한 사명자가 되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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