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새로운 것 아닌 익숙해진 일상을 ‘근본’으로 되돌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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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새로운 것 아닌 익숙해진 일상을 ‘근본’으로 되돌리는 것
  • 김성해 기자
  • 승인 2016.11.09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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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우리에게 무얼 남겼나

        기독교학문연구회, 5일 ‘종교개혁의 유산과 과제’ 주제로 다뤄

        한국교회, 중세 로마교회와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며 개혁 촉구
 

1517년 10월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이는 교회 개혁의 출발점이 됐고, 16세기 중세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1년 남짓 남겨둔 시점. 지난 5일 기독교학문연구회는 성균관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종교개혁의 유산과 과제’라는 주제로 학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강연은 신학,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교수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송태현 연구부학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주제강연에서 교수들은 각자 맡은 분야는 달랐지만 한 목소리로 한국교회 개혁의 중요성을 외쳤다. 


중세교회와 한국교회의 모습
발제자 유해무 교수(고려신학대학원)는 “한국교회에 개혁이 시급한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중세 로마교회의 형편과 한국교회의 현실은 너무나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교회 개혁을 사역과 존재의 목표로 삼은 단체나 언론 기관이 적지 않으며 종교개혁기념일만 되면 종교개혁의 역사적 사실을 개진하는 정도를 넘어 한국교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강연이 즐비하다. 그는 “짧은 기간에 성장을 경험한 한국교회가 이제는 짧은 기간에 쇠퇴와 부패, 타락의 늪에 점점 깊이 빠져가고 있다”며 한탄했다. 

하지만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해서는 중세교회와 한국교회는 차이점을 보였다. 중세시대 교회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했다. 로마교회의 ‘교황권의 확립’은 그들이 내세운 교회의 일치를 향한 관심이었다. 그러나 개신교회, 특히 한국 개신교회는 뿔뿔이 흩어졌다. 유 교수는 “한국교회는 늘 개혁을 운운하지만 일치를 향한 신학적 관심은 결여됐다”고 비판했다. 

종교개혁이 가져온 변화
김중락 교수(경북대학교)는 “종교개혁은 단지 서구 기독교회의 조직과 교리, 예배 모습만 바꾼 것이 아니라 서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 문화, 정신까지 바꿨다”며 “종교개혁은 단지 교회의 개혁만이 아닌 거대한 사회개혁운동”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종교개혁에 대해 철학자 볼테르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압제에 대한 저항”, 프랑스 역사학자 귀조는 “인간 이성을 해방시키고자 한 노력”, 역사학자 랑케는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발생한 정신혁명” 등으로 평가했다. 

종교개혁이 발생했던 당시 유럽 국가들은 절대왕정 체제였다. ‘절대왕정’은 국왕권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며, 국왕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이자 왕의 통치의 옳고 그름은 하나님만이 책임을 지기 때문에 백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국왕에게 저항할 수 없는 왕권신수설이 중심인 사회였다. 

그러나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이후 서구사회에는 100년 이상 ‘종교개혁’이란 바람이 불었고 왕권신수설을 부인했으며 근대 시민사회의 길을 열게 됐다. 또한 각 교회는 세상과 우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지니게 됐고, 사람들이 통치자와 경제행위, 자연, 예술 등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는데 도움을 줬다. 

김태황 교수(명지대학교)는 “14~16세기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근원과 본질을 회복시키는 물결이었다”며 “종교개혁은 백성들의 곪은 상처와 질식된 소망을 세상에 드러냈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즉 생명과 건강의 본질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새롭게 뜯어 고치는 일, 즉 개혁은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 일상을 근본으로 되돌리는 것임을 설명했다.

▲ 기독교학문연구회는 지난 5일, ‘종교개혁의 유산과 과제’를 주제로 학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주제강연에 (왼쪽부터)김태황, 우종학, 김중락, 유해무 교수와 사회자 송태현 연구부학회장.

종교개혁, 개혁인가 개악인가
김중락 교수는 유럽 신학자들이 바라본 종교개혁의 부정적 측면도 소개했다. 가톨릭 신학자 뒬링거는 “독일의 종교개혁은 실패한 사건”이라고 규정지었다. 서구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종교개혁이 정작 가톨릭 종교지도자들 및 역사가들에게는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는 취급을 받고 있다.

뒬링거 외에도 독일 종교개혁의 성공여부를 논했던 제랄드 스트라우스 역시 “1570년대 작센 선제후국의 농촌교회들의 상황을 보면 교회 출석률은 낮았고, 교리교실은 더 열악했으며 예배를 드리는 자보다 낚시를 간 자들이 더 많고, 사람들은 목사의 간청을 듣지도 않았으며 설교가 시작하면 절반이 예배당을 나갔다”고 전했다.


이러한 해석은 단순히 루터의 종교개혁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국의 종교개혁에 대해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크리스토퍼 헤이는 영국의 종교개혁에 대해 “종교개혁 직후 대다수 아이들은 교리문답에 대해 무지했고, 목회자들은 무능했으며, 성도들은 무관심했고 많은 개혁자들은 실패를 자인했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김중락 교수는 “종교개혁을 부정적인 입장으로 바라본 연구들은 주로 순종적이지 못한 교인, 성경에 대해 무지한 모습을 비난해왔다. 이는 종교개혁 직후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전형적인 불평거리”라고 설명했다. 

앞서 밝혔듯이 종교개혁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교회는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경험한 로마 교회의 부패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 교수는 500년을 눈 앞에 둔 한국교회는 절망적인 탄식으로 가득 차있다”며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를 부정하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당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교회를 이어받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교회를 만들려는 의도 역시 아니었다”며 “그들은 중세적 전통을 거부하기보단 수정하고자 했다. 또한 이러한 수정은 단지 교회만의 수정이 아닌 필연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종교개혁자들의 탄식은 종교개혁의 실패를 낙담한 것이 아니라 개혁 운동이 지속되길 바라는 소원이 담긴 것이었다.

종교개혁이 한국교회에 남긴 과제
칼빈은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내어주었고, 교회를 성화시키고 말씀의 물로서 씻기며, 흠과 주름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내시고자 한다. 교회는 흠 없이 거룩해야 한다…교회의 거룩함은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며, 교회의 거룩함은 날마다 전진하지만 목적지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말을 남겼다. 

김중락 교수는 이를 두고 “칼빈이 자신의 교회가 완전한 개혁교회가 아님을 인정한 것”이라며 “16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도 ‘가장 잘 개혁된 교회’라고 표현했지, ‘완전히 개혁된 교회’라고 말하진 않았다”고 말하며 종교개혁자들이 남긴 개혁교회는 완전히 개혁된 교회가 아님을 밝혔다.

한국교회의 여러 단체들은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개혁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루터가 외쳤듯이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교회는 유지돼야 한다. 또 한국교회의 설교는 더욱 견고하게 발전해야 하고 설교자는 생사를 걸고 말씀을 묵상하며 담대하게 전해야 한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단체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과, 교단마다 차이가 있지만 개혁주의 신앙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음은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라며 “종교개혁은 단회로 끝나버린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나야만 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에라스무스는 알을 낳았고 루터는 그 알을 부화시켰다’는 말을 인용하며 종교개혁은 교회내부에서 개혁을 추구해야 함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가는 교회 내에서 개혁을 일으키는 에라스무스 같은 인물”이라며 “지금 한국교회에는 에라스무스와 같은 선구자가 있어야 이후에 루터와 칼빈같은 인물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날 주제강연은 신학 부문에 유해무 교수가, 인문학은 김중락 교수, 자연과학에 우종학 교수, 사회과학은 김태황 교수가 각각 발제를 했으며, 발제를 마친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또한 주제강연을 마친 후에는 교육과 문화, 세계관 분야에서 각각의 대학원생들이 준비한 논문으로 분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학문연구회 유재봉 회장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종교개혁이 그동안 우리에게 물려준 소중한 유산이 무엇인지, 또한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며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문구처럼 종교개혁은 단번에 완성된 것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할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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