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기의 문화칼럼]지방에서 열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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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기의 문화칼럼]지방에서 열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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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1.0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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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기 목사의 G#Eb(God은 # Ego는 b, 즉 하나님은 높이고 나 자신은 낮추는 예배자를 의미)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원을 다니며 찬양사역자로 데뷔해 활동하던 몇 년을 제외한 전 인생을 지방에서 살아왔다. 고향을 떠나고도 싶었고, 실제로 잠시 떠나있기도 했었고, 본의 아니게 내가 입고 있는 소위 ‘경상도 남자’의 정서로부터 자유롭고도 싶었고, 이곳의 뿌리 깊은 저열한 정치의식과 지역감정과 그 숱한 역사적 과오로부터 손을 씻고도 싶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수도권에만 집중된 기형적인 이 나라 ‘서울민국’에서 지방에선 도무지 꿈을 이루기 위한 인프라도 시스템도 전무한 상황 자체가 원망스러웠더랬다.

 당시 CCM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스물다섯의 내가 앨범을 내기 위한 유일한 선택은 ‘서울행’이었다. 나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며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서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갔다. ‘하늘소망’이라는 노래가 소위 대박이 나며 제법 인기대열에 들어서던 즈음, 나는 돌연 귀향을 선언했다. 소속사 사장, 매니저들은 펄쩍 뛰며 난리를 쳤고, 속 깊은 파트너는 말은 없었지만 간절한 만류의 눈빛을 보냈다. 신혼이던 아내와 고향에 계신 부모님도 한창 승승장구하던 때의 귀향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 모두가 나의 선택을 동의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평소 지론대로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될 땐 주저 없이 그 중 제일 좁은 길을 선택한다는 원칙에 충실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잘난 선택의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했다. 녹음이나 사역이 있을 때마다 왕복 8시간 이상 걸리는 기차를 주 2, 3회씩 타야만 했고, KTX가 생기곤 시간은 줄었지만 비용은 늘어났다. 이런 물리적인 불편함보다 더 불편했던 건 내 이름 뒤에는 늘상 ‘지방 사역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의 내가 가장 떼어버리고픈 이름이었다. 

내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가야하던 시절은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녹음실도 하나 없었고, 전문 연주자도 없었고, 앨범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 땐 서울로 가는 것 외엔 사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꼭 다시 돌아와 그 시절의 내가 꾸던 꿈을 이곳에서도 현실화 할 수 있게 하겠노라고.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지 10여년이 지난 현재, 그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도 더 큰 일을 하려면 서울로 와야 한다는 지인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더 큰 일’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만 나는 조용히 웃고 만다. 간혹 서울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이 내려와 집회를 하면서 그들은 외친다. 성경 속의 큰 인물들은 다 지방 출신이었다느니, 예수님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소릴 들으셨다느니,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서울 출신이 어디 있더냐, 나도 지방 출신이다 어쩌구. 그러면서 자기는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들의 설교는 하나도 힘이 되지 않았다. 

대신 일본의 시인이자 구도자이자 농부였던 야마오 산세이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지방에서 살아도 우주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서울에서 살아도 자신의 발밑만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기도한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지방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그래서 내 삶과 사역이 지방 출신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길을 내어줄 수 있기를.  그러다보면 또 누군가는 이곳으로부터 길러지고, 또 누군가는 돌아오기를. 나는 이 곳, ‘지방’에서 ‘열방’을 가슴에 품어본다. 우직하게 30여 년 동안 대구를 지킨 우리 팀 <찬미워십>의 구호처럼 말이다. 지방에서 열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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