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학원 40년 결정체 ‘개혁주의생명신학’으로 한국교회 주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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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학원 40년 결정체 ‘개혁주의생명신학’으로 한국교회 주도하라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6.10.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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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생명신학실천원, 지난 18일 제18회 학술대회 개최
▲ 개혁주의생명신학실천원이 백석학원 설립 40주년을 맞아 학술대회를 열고 ‘백석학원 40주년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미래의 비전을 논의했다.

        학교 설립 40주년 맞아 ‘백석학원 40주년 회고와 전망’ 다뤄

       고신대 이상규, 백석대 임원택 교수 강사로 나서 미래비전 선언

백석학원 설립 40주년을 앞두고 개혁주의생명신학실천원(원장:김정훈)은 지난 18일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원장:임원택)과 함께 제18회 학술대회를 열고 ‘백석학원 40주년 회고와 전망’을 논의하며, 미래를 향한 백석학원의 과제를 모색했다. 

이날 외부인사로 초청돼 ‘백석학원의 신학교육 40년, 역사와 과제’에 대해 발제한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장 이상규 교수는 “백석대학교는 1976년 용산구 동자동에서 대한복음신학교로 시작됐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40년이 지난 후에는 3개 대학교를 설립했고, 국내에서 가장 큰 신학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상규 교수가 백석학원 40주년에서 관심 있게 본 부분은 ‘설립정신’의 지속성이다. 이 교수는 “기독교대학으로서의 현재의 백석대학교와 개혁주의 신학교육기관으로서의 신학대학원의 향후 행로를 위해 이념주도세력의 확립과 계승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료된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기독교 설립이념이 유지된 것을 설립자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장종현 목사가 설립한 신학교는 1990년대 기독신학대학으로 승격, 1996년 기독신학대학원대학교 설립 인가 후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2000년 이후 신학 전 분야의 유능한 교수가 초빙되었고, 새로운 교사가 건축되고 시설이 정비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무엇보다 신학 전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들로 교수진을 구성하게 되었고 신학자 수에 있어서도 한국의 어떤 신학교육기관보다 많은 수적 우위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특히 신학적 측면에서 백석대 신학대학원은 ‘개혁주의생명신학’으로 독자성을 확보했다. 설립자 장종현 박사가 지난 2003년 복음주의신학회 제2차 국제학술대회에서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생명이 없는 신학운동에 쐐기를 박았고, “삶을 위한 신학을 추구하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이 백석학원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됐다”고 역설했다. 

이상규 교수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서구신학적 전통에서 볼 때 신학을 ‘선하게 사는 교리’라고 말했던 아메시우스나 ‘신학자를 만드는 것은 가슴(영혼)’이라고 했던 니안더의 주장을 환기시켜 준다”며 7대 실천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개혁주의생명신학에 의미를 부여했다. 

백석학원이 40년 동안 이룬 것은 단순한 발전과 신학 정립에 그치지 않는다. 이상규 교수는 “3개 대학교를 운영하면서 기독교 교육을 실시하되 교목제도를 강화하여 명실상부한 기독교적 인재양성에 기여하고 있다”며 “백석대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졸업생이 3천600명에 달한다는 자체만으로 이 학교가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을 헤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백석학원이 40주년동안 이룬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 교수는 “‘백석학파’라고 불릴 수 있는 학문운동을 전개하기를 기대한다”며 “백석대학교의 신학연구가 백석학파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백석 신학대학원 안에 충분한 인적 자원과 학문적 수월성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며 한국교회 신학의 새로운 모색이 백석에서 출발하길 바란다는 격려를 남겼다. 

‘백석학원 40년, 회고와 전망’으로 발표한 백석대 신학대학원장 임원택 교수는 백석학원의 성장이 설립이념에서 비롯됐음을 주장했다. 

임 교수는 “대한복음신학교가 설립된 1976년 당시 한국교회에는 대중전도운동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이러한 열기도 1950년대 이후 점점 더 심해져가는 한국교회의 분열과 반목을 해소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한국교회를 보면서 설립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 영혼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길러내고 싶어 했다”며 학교 설립의 이유를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학교의 발전이 지속되면서 신학교를 모태로 시작된 백석학원은 4개 학교로 분립 발전을 거듭했다. 그중에서도 백석대학교, 백석문화대학교, 백석예술대학교는 신학전문 과정이 아닌 일반대학으로 세상에 내보낼 다양한 기독교 인재 양성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당시 장종현 설립자는 ‘복음에 의한 대학교육’을 목표로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도록 돕고, 참다운 삶의 의미와 사명을 깨달아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교육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장종현 목사는 백석학원 건학 25주년에 “우리나라에 이미 많은 대학들이 있는데, 목사인 내가 무엇 때문에 또 하나의 대학을 더 세워야 했겠습니까? 나는 ‘복음에 의한 대학교육’이라는 일념을 가지고 학교를 설립했고, 그 일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임원택 교수는 백석학원의 40년 역사를 1~4기로 구분했다. 제1기는 1976년 학교 설립부터 1985년 총회신학교와 총신기술학교 설립까지인 ‘복음전파의 터전 마련’으로 요약했고, 제2기는 천안외국어전문대학 설립과 4년제 신학대학인 기독대학교 인가, 천안 캠퍼스 시대의 개막과 4개 학교의 분립발전의 기틀이 된 시기를 ‘학교의 성장과 발판 마련’으로 보았다.

제3기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로 백석학원에 속한 학교들이 성장하면서 기독신학교가 독자적인 생존을 하게 되고, 채플과 기독교 교양필수 과목을 통해 신앙교육을 강화하는 등 학원복음화 사역이 강화된 ‘성경적 세계관에 기초한 학문 연구와 교육 시행’기로 정리했다. 제4기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로 백석학원과 총회의 신학 정체성인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정립과 확산기로 꼽았다. 

임 교수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기독교대학의 글로벌리더로 웅비하는 것”이라며 “백석학원의 40년이 소멸되어가는 기간이 되느냐, 아니면 승리의 기간이 되느냐는 백석학원에 속한 교직원과 학생들이 열 정탐꾼과 같은 불신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으로 나아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백석학원이 걸어온 걸음걸음은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였다”며 “다른 신학교들이 신학을 붙들고 다툴 때 백석신대원은 말씀과 기도를 붙들었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복을 내리셨다. 그래서 개혁주의생명신학의 5대 표어 중 ‘오직 은혜’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백석학원 40주년을 맞아 즐거이 고백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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