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31]설교에서 이런 표현은 사용 불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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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31]설교에서 이런 표현은 사용 불가이다
  • 정장복 교수
  • 승인 2016.10.18 23: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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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다 무심코 사용하는 ‘잘못된 어법’ 주의해야
▲ 정장복 교수(장신대 명예교수·한일장신대 명예총장)

초기 청교도 운동의 지도자로 많은 향을  끼친 구두윈(Thomas Goodwin)은 “성경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지만 그 말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천 명 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다.”는 매우 뜻 깊은 말을 남긴 바 있다. 이 말은 비록 수백 년 전에 했던 말이지만 지금도 그 말은 유효하다. 오늘날도 많은 평신도들은 성경을 읽되 해석은 설교자의 소임으로 여긴다.

현대인들이 성경을 대하면서 그 뜻을 일일이 해석해 가며 읽은 사람은 소수이다. 그래서 설교자의 존재 이유가 성립된다. 그런데 문제는 설교자의 해석이 어떻 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그 정확성과 효력의 파급이 달라진다. 설교자의 언어란, 단순한 소통의 도구로서의 차원을 넘어 설교사역에서는 그 누구, 무엇보다 깊은 주의를 요하는 막중한 도구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적용하는데 사용되는 설교자의 언어구사는 작은 실수도 범해서는 안 되는 신중성을 요한다. 다음은 설교자들이 예사롭게 사용하는 문장의 끝맺음에서 발견되는 표현들이다. 보다 진지하게 살펴보면, 이 표현들은 설교에 도움을 주는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손실을 가져오는 표현들임을 쉽게 알게 된다. 

1) ~라고 하겠습니다. 설교는 자신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믿고 실천하는 표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은 간접 확인의 뜻을 갖는다. 즉, 타인의 말을 인정해주는 형태에 속한다. 다음과 같은 표현을 바로 잡아본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모시게 됨은 가장 복된 소식‘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광을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라고 하겠습니다.’를 ‘입니다.’로 바꾸면 문제점이 사라진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모시게 됨은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행위입니다.’

2) ~인 것 같습니다. ~듯 싶습니다. 설교자는 언제나 자신이 확신하는 것 만을 회중들에게 말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을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전하는 것은 말에 대한 철저한 석의가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철저한 석의를 거친 설교자는 본문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회중에게 전한다. 그러나 다음의 예는 모두가 설교자가 확신이 없이 추측에 의존하는 표현들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은 주님이 보여주신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인 듯싶습니다.’는 ‘말입니다.’로 ‘우리가 아가페 사랑을 실천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는 ‘좋습니다.’여야 한다.

3) ~수 있습니다. 성실한 설교자들은 본문에 대한 철저한 석의와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설교단에 오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잘못된 자신의 언어 습관에 의하여 자신이 준비한 설교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필자가 만난 어느 설교자는 매우 철저한 설교를 준비했는데 말 끝마다 “~수 있습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들이었다. 이 종결어는 완전한 긍정이 아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수’는 불완전한 뜻을 가지고 있다. ‘수 있다.’는 말은 언제나 ‘수 없다.’는 말을 옆에 두고 있다. 따라서 설교에서 사용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다음은 ‘말할 수 있습니다.’를 ‘입니다.’로 대체한 실례이다. ‘하나님을 변함없이 예배하는 사람이 최상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의 끝맺음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복음 안에서 사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에서는 ‘행복한 사람입니다.’가 바른 표현이다.

4) ~것입니다. ‘~말인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입니다.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원하는 것입니다. ~되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 입니다. 복받게 되는 것입니다.’는 ‘말입니다. 생각합니다. 믿습니다. 바랍니다. 되어야 합니다. 기원합니다. 원합니다. 복받게 됩니다.’이다. 우리의 설교자들이 남발하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이 설교언어 가운데 독소처럼 자리 잡고 있다. 다음의 문장에서 ‘것’이라는 독소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본다.

‘오늘의 본문에서 말한 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 것입니다.’ 이토록 심각한 독소를 완전히 제거하고 우리의 순수한 언어로 순화시켜본다. ‘오늘의 본문에서 하신 말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함은 우리의 임무입니다.’ 우리의 설교자들이 ‘것’이라는 독소를 우리의 언어생활에 품게 된 까닭을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오덕의 『우리 바로쓰기』에 그 원인이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설명에 의하면 일본어 준체조사(準体助詞) の를 모두 ‘것’으로 번역한데서 기 인했다고 한다. 우리 교회의 초기에 일본 신학서적들이 번역될 때, 무분별하게 ’것‘을 그대로 옮겨 오는 데서부터 ’것‘이 라는 독소가 우리 설교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의 언어에서 ‘것’을 사용하는 경우는, ‘나의 것 너의 것’과 같은 소유를 나타낼 때와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 일 것이다.’와 같은 미래와 추측에 불과 하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것’의 남발은 확실히 우리의 설교언어에 스며든 질병 이다. 설교자마다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점검이 시급한 현실이다. 한 국인인 설교자가 한국에서 한국말로 한국인에게 설교하면서 ‘이상한 한국말’을 사용함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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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진 2016-10-20 09:56:56
아이굿뉴스를 통해 교수님 강의를 접할 수 있어 행복한 합니다. 자칫 지나칠 수 있는 문제들을 지적 해주시고 바로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