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고난, 끝날 수 없는 은혜

투병 속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거듭나다…몽골 교육선교사 김윤자 권사 이성원 기자l승인2016.10.13 09:49:48l수정2016.10.13 10:23l13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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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자 권사는 유방암으로 투병하는 병상에서 68세에 상담학 박사과정을 수석 졸업했고, 폐염증으로 죽을 고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치유를 경험했고, 뇌종양 판정을 뚫고 몽골에 가서 선교사역을 감당할 정도로 당찬 신앙인이다. 한없이 약해보이지만 믿음의 강단이 숨겨져 있는 그녀는 하나님,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들, 또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후원해주는 교우들에게 늘 감사해 한다.

김윤자 권사를 사진으로만 보면 이럴 거다. 별 걱정 없이, 스마트하게 생긴 남편과 함께 행복한 노후를 즐기고 사는 팔자 좋은 여자구나. 더구나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미국에서 자리 잡고 68세에 박사학위까지 땄다니. 

그러나 그녀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유방암을 수술했더니 다음엔 심각한 폐염증이 발견됐다. 그 와중에도 시작한 공부에서 상담학 박사학위를 받고 몽골에서 교육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데, 그곳으로 떠나기 이틀 전에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몽골에서 물난리, 불난리, 별별 일 다 겪으면서 어떤 때는 달랑 100불 밖에 없이 살지만 모든 선교비와 후원금은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난 몰라요’하며 사는데, 이게 또 기적을 낳는다. 고난 속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 첫걸음은 암이었다. 

유방암, 폐염증에 뇌종양까지
“처음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죠. 암이라니요.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인 줄 알았어요. 몸이 좀 좋지 않았는데 가슴에서 뭔가 몽우리가 발견됐어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는데 유방암이라고 하더군요. 정신이 아득했죠.”

지나간 날들이 아련히 떠올랐다. 1967년, 남편과 함께 미국 땅을 밟았다. 이화여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미국에서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된 이민생활은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온 40여년 고생 덕에 남편의 사업은 안정됐다. 두 아이는 장성해서 가정도 꾸렸다. 이제 좀 인생을 즐길 때가 됐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봉사하고, 남은 시간엔 골프도 치며, 이제 좀 사는 것처럼 사는가 싶었다. 그런데 암이라니.

“수술은 잘 끝났어요. 성경통독을 하며 요양하고 있는데, 아는 분이 기독교 상담을 공부해보라고 하더군요. 방학 중에 열리는 특강에 참석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제가 교회에서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상담학을 배워 접목시키면 너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했죠.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를 병상에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폐에서 염증이 발견됐다. 그것도 아주 특별하게 독한 균이었다. 기존의 치료로는 역부족이라, 덴버라는 곳으로 옮겼다. 그날 밤이었다. 남편은 마침 선교대회 일로 그녀 곁을 비웠다. 

새벽 3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숨이 막혔다. 폐기흉이 생겼다.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비상벨을 눌렀다. 의사는 오지 않았다. 암담했다. 예수님을 찾았다. 그날은 예수님도 보이지 않았다.

난 이제 죽었구나, 절망에 빠졌을 때였다.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이게 무슨 소리야?”고 외쳤다. 그때 웅장한 음성이 그녀를 덮었다. ‘이것은 LA연합감리교회에서 너를 위해 드리는 중보기도다!’ 주님의 음성이었다.

▲ 상담학 박사 졸업식에서 가족들과 함께 한 김윤자 권사


중보기도 환상 보고 살아나
너무 놀라서 눈을 떴다. 중보기도가 향이 되어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신비한 체험이었다. 그 환상을 보자 까무러져있던 그녀에게 알 수 없는 힘이 꿈틀거렸다.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길게, 길게 호흡을 했다. 찌그러져있던 폐가 조금씩 펴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그 환상을 못 봤으면 전 죽었지요. 그렇게 힘든 투병 속에서도 대학원 졸업 시험을 봤어요. 병상에서 공부를 했어요. 죽기 살기로 공부한 거죠.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9개 과목을 시험 봤어요. 저보다 교수님들이 더 염려를 하더군요. 이 병든 노인네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고요.” 

시험이 끝나고 메일이 왔다. 9과목 모두 95점. 수석 졸업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서 그녀는 남편에게 다시 보라고 했다. 남편이 함박웃음으로 말했다. “와, 역시 우리 마누라구나! 우리 악바리는 못 당해!”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었던 기적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하나님께 계속 물었죠. 이 나이에 왜 제게 박사학위를 주셨느냐고요. 그때 가난한 외국 대학에 가서 무료로 봉사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사실 제가 이대 간호과를 들어갈 때부터 언젠가 선교사로 가겠다는 꿈이 있었어요. 남편 이광언 장로와 미국에 왔을 때도 언젠가 돈 벌어서 선교하자는 마음이었고요.”

그러나 먹고 사는 생계에 매여 그 꿈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질병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그 꿈이 다시 생각났다. 몽골의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상담실을 열어 사랑을 베풀면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선교의 길을 떠났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지만 막상 몽골 땅을 밟으니까 두려웠어요. 처음 2주는 매일 울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황량한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어요.”

한 밤중에 누군가 문을 부셔져라 두드렸다. 어떤 화가 잔뜩 난 몽골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랫집 사람인데, 그녀의 수도가 고장이 나 아랫집에 홍수가 난 것.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낯선 그곳에선 이런 일상적인 일마저도 ‘공포’로 변한다. 

▲ 학생들과 찍은 사진은 그녀가 몽골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 모습.

몽골 학생들에게 사랑을 전하다
한번은 또 불이 나서 자다가 여권만 챙겨서 뛰쳐나온 적도 있다.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도 즐거운 퇴근길이 아니다. 길 상태도 안 좋고, 취객의 행패도 빈번하다. 걷는 것도 무섭지만 택시 타는 건 더 두렵다. 몸도 약한 70대 여자가 혼자 지내기엔 모든 게 불안한 낯선 땅이었다.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괜한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할만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체험하게 돼요. 여긴 단수와 단전이 수시로 일어나서 엘리베이터도 자주 멈춰요. 위험해서 탈 수 없으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물건도 있고 너무 힘들어요. 또 불이 없어 캄캄해서 무서웠고요.”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운동이나 산책할 데가 없는 몽골에서 그나마 계단을 이용한 것이 그녀에겐 큰 운동이 됐다. 암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거기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꼈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의 인생이 이렇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제 꿈은 이 학생들을 위해 체육관을 지어주는 거예요. 영하 38도의 춥고 긴 겨울이라, 아이들이 집에서 늘 술과 담배,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살거든요. 또 몽골 도서관에 상담 책이 없는 것 같아 부족하지만 ‘크리스천 카운슬링 입문’을 쓰고 있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정동제일교회를 담임했던 김광우 목사다. 이승만 박사 소천 때, 장례예배를 집례했다. 9남매의 살림은 늘 쪼들렸지만 아버지는 사례금을 타시면 늘 먼저 타계한 동생네 자녀들 등록금으로 보내주시곤 했다.

그녀는 이화여중, 여고 6년 내내 네 언니를 거쳐 물려받은 교복을 입고 다녔다. 하도 색이 바래 ‘우라까이’ 해서(뒤집어 만들어서) 입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교복. 졸업 후 30년 만에 동창을 만났는데, “윤자야, 너 이화 다닐 때에 전교에서 제일 이상한 색깔 교복을 입고 다녔던 거 기억나니?”하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베풀면서도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주님의 은혜다. 이제 또 뇌종양 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두려우랴.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데.

이성원 기자  jos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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