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고독은 가을의 선물
상태바
[추태화의 문화칼럼]고독은 가을의 선물
  • 운영자
  • 승인 2016.10.12 15: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이 완연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더욱 가볍게 새털처럼 우주에 퍼진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여명에나 해지는 석양에나 신비하게 열리는 빛의 스펙트럼은 황홀한 우주쇼다. 한편의 말없는 드라마가 매일 우리 앞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 황홀경을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는가. 아스팔트, 시멘트, 철골, 유리, 석면 등으로 대변되는 도시의 삶은 하늘조차 바라보기 어렵게 한다.

고개만 들면 되는데, 고층빌딩 숲이 시야를 가려버린다. 밤하늘의 별을 보기 힘든 것은 어마어마한 원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라는, 그 힘에 발광하는 가로등에 뒤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도시인인 현대인들은 현대 문명이라는 섬에 갇혀버린 것은 아닐까. 햇볕, 공기, 물 같은 생명의 본질까지 언젠가는 인공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에는 한번 즘 이런 고뇌에 빠져볼 만하다.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이 제목으로 고뇌한 적이 있지만, 사실 인류의 가장 원초적 질문이다.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망가넬리라는 이태리 작가는 이런 문구를 남겼다. “세상에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 한, 문학을 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그렇다. 이 장엄하도록 푸르른 하늘이 펼쳐지는 가을날에 이런 질문을 해보지 않는다면 분명 죄악일 것이다.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고독, 하나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 광대무변한 우주 안에 먼지보다 작은 미물로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지진이나 폭풍이 일어 나를 삼킨다 한들 누가 나를 건져낼 수나 있을까. 쓰나미 속에 밀려가는 나뭇가지보다 힘없는 나를 누가 이 땅에서 기억이나 한단 말인가. 그런데 나를 안다고 말씀하시는 그분이 계시다. 그는 과연 누구신가. 이렇게 우리 영혼에 속삭이시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네가 모태에서 조성되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너를 지었고, 너를 이 세상에 보냈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이고, 너는 내 것이다.’

바울 사도는 아라비아 사막으로 갔다. 사막 교부들도 사막으로 갔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안락한 도시를 떠나, 풍요로운 집을 떠나 산으로 들로, 사막으로 갔다. 사막은 고독의 땅. 오로지 하나님 앞에 혼자 서기 위해 척박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그분께 묻고 또 묻기 위해, 기도만이 이 풀 수 없는 질문을 그분께 올릴 수 있기에 사막으로 갔다. 고독은 가을의 선물이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생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홀로 되어보지 못한 이는 결코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없다. 가을엔 고독해야 한다. 고독 속에 길이 있다. 평화의 길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