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의 하나님보다 더 큰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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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보다 더 큰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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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11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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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은혜와 사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은혜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부모가 자녀를 꾸중하는 것을 예로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녀들은 자신이 잘못하였을 때,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착한 일을 하였을 때는 칭찬 들을 것을 기대한다. 

자녀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부모가 자녀를 너무 사랑하지만, 자녀들의 그릇 된 행위에 대하여 자녀를 바르게 세우기 위하여 벌을 준다는 사실을 자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 때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 또한 우리를 비롯하여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실 때, 공의와 은혜로 다스린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애쓴다. 특별히 유대인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하나님은 공의의 속성과 은혜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유대인 교사는 특별히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을 사용하여 2세들에게 설명한다. 그들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인 ‘엘로힘(하나님)’과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여호와 엘로힘(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과 은혜의 속성을 설명한다.

유대인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실 때,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고 생각하여 단어 하나하나를 깊이 연구하였다. 이 때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는 모든 호칭에도 각각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그 호칭을 다르게 번역하기를 즐겨하였다. 그래서 랍비들은 ‘엘로힘(하나님)’이라는 호칭은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공의의 속성’을 나타내는 호칭이라고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를 바르게 세우기 위하여 경고성 벌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때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자녀가 그릇된 행위를 하고 있을 때, 벌을 주어서라도 바른 길을 가게하려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라 부르는 호칭은, 은혜의 하나님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고유한 호칭이라고 유대인 교사는 가르쳤다.
특별히 유대인 교사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성품을 은혜의 성품이라고 하면서, ‘여호와’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 뿐만 아니라, 무한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라고 하였다. 탈무드 랍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두고 토론하였는데, 그들의 토론 주제 가운데 아주 흥미로운 주제가 한 가지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게 기도하신다면 무엇이라고 기도할까?’

여기에 대한 대답을 랍비들은 탈무드에 기록하였다. ‘은혜가 나의 진노를 정복하는 것이 나의 뜻이 되게 하고, 공의가 나의 모든 다른 속성을 억제하면서 엄격한 공의의 발하여, 모든 피조물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가지고 피조물을 보존 하는 것이 나의 뜻이 되게 하라!’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도, 즉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공의를 나타내야 할 경우에도, 하나님은 그로부터 즐거움을 얻지 못 하신다.

이것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랍비들은 부모님이 자녀를 벌하는 것을 예로 든다.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자녀를 벌할 수밖에 없는 경우, 부모는 이런 말을 한다. ‘이 벌이 너를 아프게 하는 것보다 나를 더 아프게 만든다.’ 또한 랍비들은 성경에서 하나의 예를 인용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되었다. 이 때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바다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집트 백성들을 물 속에 수장하신 공의의 하나님을 또한 찬양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찬양을 중단하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고 한다.

‘그대들은 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아는가? 저 물 속에 빠져 죽어가는 저 이집트 사람들 또한 내가 창조한 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그대들은 왜 모르는가? 저 이집트 사람들을 물 가운데 수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아픈 마음을 그대들은 왜 헤아리지 못 하는가?’

천사들은 찬양을 중단하고, 마음 아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경배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유대인 교사들은 탈무드의 가르침을 통하여 공의의 하나님보다 무한히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2세를 세우기 위하여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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