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27]나는 왜 이 설교를 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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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27]나는 왜 이 설교를 하게 되는가?
  • 정장복 교수
  • 승인 2016.09.28 15: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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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의식을 지키는 것이 성공적인 설교의 기본이다

수사학의 원조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의 전개란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해진다.”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어느 분야에서보다도 현대 설교학에서 비중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설교학에서, 모든 설교는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성공적 결실을 거두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설교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적을 세우고 준비하여 선포함이 기본적 절차이다. 설교마다 적중해야 할 과녁이 있다. 그 과녁을 설정하지 않고 설교를 진행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담스(Theodore F. Adams)는 “설교자들은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목적과 능력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함”을 설교자의 기본으로 말하고 있다. 흔히들 철학적인 사고와 분석과 설명을 나열하는 동안 설교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본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 급조한 설교의 경우도 심사숙고해야 할 목적을 상실하기 쉽다. 때로는 안일한 강해 일변도의 설교나, 갖가지 경험담의 나열로 시간 안배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적중해야 할 과녁을 맞히지 못하는 것을 쉽게 본다. 설교가 방향을 잃고 시간만 채우며 허공 속을 헤메게 된다면 그것은 설교자가 범하는 중요한 실수임에 틀림이 없다.

설교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말 한다면 사랑, 회개, 봉사와 같은 주제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보다 더 광범위한 관점에서 설교의 목적을 크게 네 분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선포적인 설교(KerygmaticPreaching)이다. 일명 전도설교라고도 한다. 이 설교가 담고 있는 목적은 주로 구원의 진리를 선포한다. 즉,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이심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주님의 오심, 생애, 교훈, 수난, 부활, 승천, 재림을 핵심적 메시지로 전하는 설교이다.

이 설교의 대상은 불신자들이나 구원의 확신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설교를 어느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 시킬 수는 없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신앙 연조가 깊어가는 것에 비해 구원의 감격이 희미해져 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정서의 회중들이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고 새롭게 다짐할 수 있게 하는 설교가 필요하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는 설교에는 다음 몇 가지의 원칙을 필요로 한다. (1)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성(罪性)이 분명하게 보여야 한다. (2) 구원이란, 인간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3) 구원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수난과 부활이 핵심이어야 한다. (4) 복음의 진리가 보편타당성의 명료함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5) 구원이 내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 삶 속에서의 실제적 사건으로 이해되도록 한다. (6) 설교자는 듣는 이들의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는 설교자가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임을 기본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둘째는, 교훈적인 설교이다. 영국의 신약학자 도드(C.H. Dodd)는 사도들의 설교를 선포와 교훈으로 분류한 바 있다.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무엇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이다. 설교자의 일차적 관심은 ‘구원’이며 그 다음은 구원받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권속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어야한다.

여기에 초점을 두고 준비하는 설교는 다음의 몇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1) 많은 항목의 필요를 느끼더라도 하나의 목적에 충실해야한다. (2)지정된 항목을 목적으로 교훈적인 설교를 할 때, 회중들의 반응은 흥미로워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설교자는 이 점에 유의하여 흥미가 동반 되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교리 또는 신학적인 주제들이 설교에서 사변적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많다. 설교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필요한 메시지어야 함을 인식하고 현장 위주의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는, 목양설교이다. 일명 치유설교라고도 불리는 이 설교는 상처받은 심령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시대의 발전이 첨단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데 반하여 인간내면의 상처는 더 골이 깊어지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이나 가정, 정치, 경제, 사회의 전반에 걸쳐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다수의 설교자들이 이 목양설교를 많이 하고 있는 경향이다.

위로와 격려와 치유를 목적으로 설정하고 진행하는 설교 역시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 많다. (1)설교자는 회중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알고 느끼는 깊은 연민의 감정을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2) 회중이 처한 환경과 문화적 형편을 잘 살펴 심층 분석을 할 수 있는 지적인 노력과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3) 회중이 안고 있는 문제를 설교자의 능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오직 말씀으로 먹이며, 스스로 성령님의 도움을 찾아 나설 수 있기까지 이끌어주는 것에 주점을 두어야 한다.

넷째는, 예언적인 설교이다. 오늘날의설교자들은 회중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말씀을 전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진리에는 쓴 소리와 단 소리가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예리한 책망도 거침없이 전하는 용기와 사명이 있었다. 예언적 설교는 개인들의 죄와 모순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권력의 탈선과 부조리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과 메시지를 담는다.

주의해야 할 것은 설교자가 자칫 성자의 입장에서 회중을 향해 질책하는 양상은 절대 금물이다. 설교자도 결코 의인이 아님을 마음에 두고 본 설교를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설교는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자주 사용하는 것보다는 그 횟수를 최소화 하면서도 효율적 전개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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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형 2016-09-28 16:25:01
사람의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만 하자....교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