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25]서론에서 회중을 붙잡아야 한다
상태바
[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25]서론에서 회중을 붙잡아야 한다
  • 정장복 교수
  • 승인 2016.09.07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교 시작 후 2~3분, 집중력 높이는 ‘서론’이 중요
▲ 장신대 명예교수·한일장신대 명예총장

설교자에게는 공통적인 고민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첫 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사무엘 멕콤(S.L. McComb)은 그의 명저 『설교의 이론과 실제』에서 “설교를 쉽게 무너뜨리는 두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서론과 결론이다”라는 뜻깊은 말을 남긴 바 있다. 설교를 듣기 위해 앉아 있는 회중들의 심신은 한 주간 일상에서의 사연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한 상태의 회중들이 찬송과 기도, 성경봉독, 찬양을 끝낸 다음 설교자가 등장했을 때 눈을 뜨고 귀를 연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집중력이 모아지는 시간이 2~3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쌩스터(W.E.Sangster)는 “만일 설교자가 설교를 시작한지 수분 내에 회중의 집중력을 붙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본론까지 이끌고 갈 희망이 보이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서론을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설교자들에게 다음의 조언들을 주고 싶다.

먼저, 좋은 설교의 서론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주의해야 할 몇 가지의 항목들을 본다. 첫째는, 서론은 간단하면서도 깔끔하고 짜임새가 있는 서론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서론은 기본적으로 짧은 시간에 함축성 있는 어휘와 문장들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장황한 설명이 나오거나 불필요한 어휘들이 섞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서론의 길이도 설교 전체의 10%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서론은 신중성이 있어야 한다. 회중들이 설교자의 장엄한 서론에 이끌려 가다가 본론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 실망은 곧 설교자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진다. 회중들은 걸작을 보여 줄 것 같은 서론에 이끌려 본론의 세계에 들어갔는데, 상상 외의 졸작임을 알게 되었을 때 설교자의 한결같지 못함에 마음 상하게 됨을 유의해야한다.

셋째는, 서론은 회중들의 관심, 곧 흥미를 유발시켜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관심 또는 흥미란 오늘의 설교를 자신이 들어야 할 가치로 측정하는 부분이다. 서론에서 회중의 호기심이 유발되지 못한다면 그들은 설교 밖의 세계에서 머물다가 메시지를 끝내 접하지 못하게 된다. 서론이 전개되는 짧은 시간에 회중들의 귀가 열리느냐 또는 닫히느냐의 빗장이 결정된다.

넷째는, 서론은 설교의 방향과 내용을 넌지시 알리도록 한다. 설교의 서론은 일반 논문의 전개와는 다르다. 논문의 서론에서는 본론에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전개하겠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설교의 서론은 암시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의 서론은 무엇을 쫓아오도록 유도하는 형태를 필요로 한다. 환언하면, 베일에 가린 진리에 관심을 끌게 해야 한다.


다섯째는, 서론에서는 설명을 첨가하는 설교를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설교자들이 서론의 말미에 본론에서 행할 설교를 하는 경우를 본다. 서론은 본론이 아님을 알고 있는 설교자라면 서론에서부터 설교를 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 서론에서 제시된 부분을 적용하고 싶은 경우는 한 두 문장으로 본론과 연관된 설명을 덧붙일 수 있다.

다음으로, 이상과 같은 주의사항에 유념하며 좋은 서론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본다.


첫째는, 인간의 삶에서 발생한 이야기들을 사용한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제시될 때 회중들은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가 오늘의 본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설교자 개인이나 가정의 이야기가 등장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설교자가 지키기 힘든 설교의 금기사항이다.

둘째는, 한 주간에 있었던 뉴스를 제시한다. 지금 우리는 예전과 달리 대중매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사회의 다방면에서 발생한 뉴스들이 인터넷이나 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그 날의 메시지와 연관 시킬 수 있는 뉴스들을 활용할 때 회중들의 관심이 함께 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 성향의 편향적인 보도에 설교자가 함께하는 인상을 보이지 않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셋째는, 음미할만한 경구를 인용해 서론을 시작한다. 경구(驚句)란 명사들에 의하여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예리하게 표현한 말을 일컫는다. 설교자가 평소에 경구를 모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경구는 여러 문장으로 서술해야 할 내용을 간결한 문장으로 담아낸 값진 말들이다. 그 때문에 서론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넷째는, 신간 서적들에게서 필요한 부분을 인용한다. 오늘날의 회중들은 책보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다. 독서를 동경하면서도 막상 본인들은 실천에 옮기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있다. 이 아쉬움을 설교자가 채워주면서 설교를 진행하는 매우 값진 시도이다. 이 형태는 자주하는 것보다 일 년에 5~6 차례 시도해 볼 만하다.


다섯째는, 계절의 변화에서 서론을 찾는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다. 설교자가 일 년 내내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사도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에…”와 같은 형태만을 취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진부함에 아찔하다. 무더운 여름과 눈이 쌓인 겨울까지 계절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메시지를 접근한다는 것은 건조한 설교자의 사고를 벗어나는 쉽고도 좋은 길이다.

여섯째는, 서론에 유머를 사용한다. 현대인들은 웃음이 동반되는 유머를 좋아한다. 웃음은 불편한 감정을 정화시키는 매우 특수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유머의 사용은 좋은 방법 둘 중에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저질적인 유머의 시도는 존엄한 진리의 전달에 손상을 가져오기 쉽다. 따라서 설교자는 이 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