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와 자문이 없는 '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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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와 자문이 없는 '난세'
  • 승인 2003.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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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亂世)란 어지러운 세상을 뜻하며, 원로(元老)란 정치적 덕망, 관위, 연령이 높은 공신 또는 한 분야의 덕망과 공로가 있는 분이다. 고대로마의 원로원은 모든 영역의 자문기관이었다. 자문(諮問)이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바르게 지도해 주는 원로들이 적으며 설혹 있다 하여도 자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도 있다. 바른 자문이 없는 사회는 난세가 될 수밖에 없다.

성경에는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이 난세를 만나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원로들은 백성들의 종이 되어 부왕이 백성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고 권면하였으나 원로들의 고견을 버리고 같이 자라난 소년들에게 문의하여 결국 부왕이 무겁게 한 멍에를 더욱 무겁게하는 폭정을 택하여, 결국 남북왕조로 분단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보통 난세가 아니다. 많은 백성들이 우려하고 있다. 기본이 되는 가정문화부터 난세다. 이혼율의 급증, 만혼, 자녀생산을 극도로 제한하고 노인인구는 늘어나고 가부장 중심이나 형제나 자매의 질서가 다 깨어져 가정윤리가 파산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사회전체가 혼란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부정, 불의, 거짓이 판을 치고 균형과 조화가 깨어진 질서가 문란한 사회현상으로 바른 교도를 해주는 것 또한 받아 들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마저도 거룩성은 물론 윤리파산으로 교역자와 성도사이, 성도 상호간에 질서가 없으며 교단의 어른도 드물다.

또한 어른 자신들이 불의나 불법을 보고도 몸을 도사리고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 오직 강단에서만 거룩을 주장한다. 한국교회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세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요, 두번째는 헌금하라는 것이요, 세번째는 책망설교라 한다.

그러므로 이를 의식하여 잘못을 꾸짓지 못하고 보신책으로 성도의 비위를 맞춰 결국 강단권은 위축되고 성도들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교회의 특징은 권징이 없다. 교회의 바른 권징은 성경의 가르침이며 그리스도의 은혜다.

잘못된 시위문화(示威文化)가 교회안에까지 들어와 교단마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시위란 위력이나 기세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사회는 시위천국이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교회야 어떻게 되든 관계치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바른의식, 정의로운 법인줄 알면서도 이를 밝히지 않고 의로운 저항을 하지 않는, 많은 침묵하는 무리가 있음이다. 이는 결국 소수의 시위자들의 시위가 공동체 전체를 어지럽게 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 우리사회의 개혁은 옳은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공의의 실현과 원로와 자문이 있는 바른 회복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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