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신앙유산 찾아서 함께 걸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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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신앙유산 찾아서 함께 걸어보실래요?”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6.08.3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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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독교유적지 무료 가이드로 섬기는 부산장신대 탁지일 교수
▲ 탁지일 교수

역사신학자이자 부산장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탁지일 교수. 그의 올해 여름은 무척 바빴다. 방학이면 늘 탁지일 교수는 부산을 찾는 기독교인들에게 부산만의 선교유적을 직접 안내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폭염 속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소중한 신앙유산을 하나라도 더 전하기 위해 그는 매번 목소리를 돋우고 있다.

직접 부산 선교유적지 지도를 만들고 제작해 수 만부를 교회와 교인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평소에도 한 달에 2번은 꼭 대가없이 선교유적지를 안내하곤 한다. 유적지가 부산시내에 있다고 하지만 현장을 일일이 찾다보면 피곤할 법도 한데 그에게서 힘든 기색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숨겨진 선교역사를 설명하면 할수록 힘을 얻는 것 같다.

그러나 탁 교수를 만난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는 특유의 배려가 이 낯선 곳을 찾아가는 탐방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언제라도 부산 기독교 유적을 탐방하고 싶은 가족과 교회를 위한 문의와 예약을 그는 개인 이메일로 받고 있다.

믿음의 선배들과 마주하게 되는 현장
지난 6월에는 일본 교토교회(임명기 목사)에서 기독교인들이 부산을 방문했다가 탁 교수의 안내를 받았다. 이단전문잡지 ‘현대종교’ 편집장이기도 한 탁 교수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단에 대해 교인들에게 특강을 한 후 부산 기독교 유적지 탐방을 찾아 나섰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130여 년 전 복음을 들고 찾아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인천으로 입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국내에 처음 발을 내딛었던 곳이 부산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 교회에서 파송돼 일본에 머물고 있던 알렌 선교사(1884년 9월 14일),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1885년 4월 2일)는 부산을 거쳐 인천으로 입성했다. 첫 선교사들의 사역이 인천에서부터 본격화됐지만 부산에서 국내 사역을 준비하는 시기를 가졌던 것이다.

▲ 일본에서 건너온 교인들에게 일제강점기 부산역사를 설명하는 탁지일 교수

부산 영도다리 건너편에는 첫 선교사들이 도착했던 것을 기념하는 표지석이 있다. 옛 부산항 자리 인근에 세워진 작은 표지석은 부산교계가 뜻을 모아 2013년 세워졌다. 부산을 찾은 교토교회 교인들은 탁 교수의 안내를 받아 이곳을 방문해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남들은 휴가를 떠나느라 한창이던 8월 2~4일에는 특별한 순례객들이 탁 교수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바로 제주 강정마을 어린이들이 부산을 찾은 것이다. 강정교회(박희식 목사)의 아동부 아이들이 육지로 나와 여행을 하면서 선교 역사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수년간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로 마을공동체 안에서도 갈등이 상당했던 강정마을. 그곳의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은 쉼과 위로의 기회가 됐다고 한다.

탁 교수는 가장 먼저 아이들과 함께 17세기말 일제 신사가 세워졌던 용두산 부산타워를 찾았다. 탁 트인 전망 아래 부산 전체를 바라보며 첫 선교사들의 도착지점과 순교한 첫 선교사들과 가족들이 묻혔던 복병산 자락, 한국전쟁 때 세워진 유서 깊은 피난교회에 대해 설명했다.

부산타워를 내려와서는 광복동 패션거리를 걷고 부산근대역사관에 닿았다. 부산근대역사관 건물은 일제강점기 조선 수탈을 위한 동양척식주신회사 부산지점이었고 해방 후에는 미국 해외공보처 미문화원, 한국전쟁 시기 미국대사관, 광주민주항쟁 후에는 미문화원방화사건이 발생했던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특별히 강정마을 아이들이 방문했을 때는 부산항 140주년 기념 기획특별전이 한창 열리고 있어서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강정교회 학생들을 인솔한 황미연 전도사는 “제주도를 떠나 육지를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은 아이들에게 부산 기독교 유적지를 직접 발로 걸으며 탐방한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면서 “폭염 속에서도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준 교수님을 우리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고 전했다.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여기에 잠들 것”
탁지일 교수와 직접 유적지를 도보로 순례하다보면 깊은 감동을 얻게 된다. 부산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아픈 기억이 많은 곳이지만, 그만큼 기억해야 할 선교유산도 많다. 앞서 언급한 복병산 자락은 부산항에 입항한 초기 선교사들이 터를 잡은 곳으로 첫 호주선교사 헨리 데이비스를 비롯해 여러 선교사 가족들이 묻혔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묘지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탁 교수는 이곳을 매번 잊지 않고 안내하고 있다.

▲ 부산근대역사관 탐방 중인 강정교회 어린이들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를 묻은 제임스 게일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는 여기에 잠들어있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묘역을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순례를 하면서 그의 선교정신을 기억할 수 있었다.

복병산 아래는 부산의 유명한 인쇄골목, 그 곁에는 한국전쟁 중 피난민들의 애환을 상징하는 40계단이 있다. 인근 40계단 문화관에는 당시 피난지 생활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이북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온 믿음의 선배들이 한국전쟁 시기 피난 내려와 교회들을 세운 까닭에 설립연도가 같은 중대형교회가 부산에 많다는 것도 안내자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다.

탁 교수와 함께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부산진으로 옮겼다. 부산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신여학교와 부산진교회, 일신기독교병원이 있는 곳이다.
부산경남의 선교역사는 호주교회 선교부에서 시작됐다.

호주교회는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를 비롯해 4명의 여성 선교사를 처음 파송했다. 일신여학교는 1895년 여자 고아 어린이들을 데려다 교육시켰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여성 교육기관이면서,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신여학교 학생들로부터 시작했다는 역사가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활동되고 있는 이곳은 부산시 기념물 55호로 지정돼 있다.

일신여학교 옆 부산진교회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지만, 지금은 옛 흔적을 찾기 힘들어 아쉽다. 교회에서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일신기독병원을 마주하게 된다. 한국전쟁 중 설립돼 부산을 대표하는 여성전문병원으로 명성을 쌓은 곳이다.

특히 이 병원은 ‘나환자들의 친구’로 알려진 제임스 맥킨지 선교사의 두 딸 매혜란, 매혜영 선교사 의사가 된 후 전쟁 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설립됐다는 사실 또한 감동적이다. 병원 기념전시실에는 초창기 의료기구와 산모들을 위해 사용했다는 이동식 작은 풍금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설명을 하는 탁지일 교수의 눈이 유난히 반짝인다. 구령의 열정으로 일생을 바친 선교사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산. 지금 탁 교수에게 메일 한번 띄워보는 건 어떨까.(jiilt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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