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상태바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 정성학 목사
  • 승인 2016.08.24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성학 목사의 섬 목회 이야기(16)

25년째 제주도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물론 그동안 더 열심히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불충했던 제 모습이 드러납니다. 결과는 변변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습니다. 사실 목사는 모두 임시직입니다. 저도 여기서 이렇게 있는 것이, 무슨 법적으로 보장된 자리라서 있는 것이 아니고 쫓아내지 않으니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죽을 때까지, 아니 은퇴할 때까지 그렇게 임시직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는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깨달은 것은 또 시한부 인생입니다. 100년 미만의 시한부, 길어야 100년! 그러니까 성탄 축하 카드를 한 해에 한 장씩 받아서 100장도 못 받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그게 슬프지 않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시한부 인생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랬지요. 제가 몇 년 몇 월 며칠에 태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몇 년 몇 월 며칠에 주님이 부르신다는 것이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오늘이라도 부르시면 가야 하고, 내년이라도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그래서 아등바등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 뿐입니다. 목사라는 직업이 언제부터인가 존경과 신뢰를 받기 보다는, 비난과 비하, 비아냥을 듣는 신분이 되었고, 사회와 교회를 견인하여 지도하기 보다는 견제를 당하고 감시 당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인사는 하고 감사는 표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하찮은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이는 순전히 목회자 된 우리들의 업(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는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고 사는 나그네 인생이 아니라, 영원히 뿌리내리고 천 년 만 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빚어낸 탐욕의 결과입니다. 세상 누가 이 땅에서 한 오백 년이라도 살 수 있다고 말했나요? 누가 이 땅에서 영원한 삶을 보장이라도 해주었나요?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 신기루를 만들어 놓고 그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터를 잡고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 순간의 짧은 인생을 살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을 각오로 사는 사람들에게 역겹게 비쳤습니다.

목회자의 이중성, 혹은 양면성에 너무 실망한 것입니다. 강단은 거룩한데 삶은 추하고, 말로는 경건을 외치는데 몸은 세속적이라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읽은 어느 신문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대형 교회(매도하려는 뜻은 아닙니다)의 모든 문제는 담임 목회자의 문제이고, 그 문제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돈 문제라고 정의한 어느 기사를 심각하게 읽었습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태생적 탐욕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 이 땅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 임시 정류장이며, 우리는 곧 삶을 마칠 시한부 인생입니다.

                                           정성학 목사 / 제주 기적의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