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기총 파행 당시에도 이단문제 등 개혁요구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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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기총 파행 당시에도 이단문제 등 개혁요구 높았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6.08.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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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분열 원인을 알면 해법이 보인다 (상)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통합 목소리가 높다. 이번에는 교단장들까지 나서서 통합을 압박하고 있다. 한교연이나 한기총이나 통합이 싫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식을 말할 때 두 단체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본지에서는 한기총으로부터 시작된 연합기관의 파행과 개혁요구로 시작된 한교연의 태동 등 2011년 당시 분열 상을 점검하고, 최근 있었던 통합논의와 대화, 그리고 바람직한 연합기관 통합 방안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 지난 2011년 길자연 목사의 대표회장 인준을 거부하며 총회가 정회된 바 있는 한기총. 한기총은 이날 이후 내홍을 거듭했고, 거꾸로 가는 개혁과 이단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회원들의 탈퇴를 불러왔다.



















지난 2014년 2월까지만 해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이영훈 목사) 회원 중 중대형교단으로는 유일하게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여의도총회가 남아 있었다. 당시 열린 기하성 여의도총회 실행위원회에서는 “한기총이 개인의 사조직이 되어 버렸고, 대표성을 잃었다”며 탈퇴안건이 상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기하성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지난 12일 임원회에서 ‘한기총-한교연’ 통합을 만장일치로 결의했을뿐만 아니라 2년 전 교단 총회장인 이영훈 목사를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추천하면서 한기총 개혁을 주도했다.

기하성 입장에서는 2년 전의 한기총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이영훈 대표회장 취임 이후, 한 개인의 ‘사유화’ 논란이 있던 한기총에는 인적 쇄신과 변화가 일어났으며,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으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보수기독교연합기관인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조일래 목사)과 통합을 원하는 것은 한기총이 안고 있는 회원교단의 한계와 분열로 비치는 한국교회 내의 갈등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독교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안티 기독교들의 공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보수 기독교 리더십이 둘로 나
눠지면서 발생하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 어차피 한기총에서 갈라진 줄기이기 때문에 ‘결자해지’도 직접 하겠다는 속내다.

통합에는 조건이 따른다
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이 한교연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지난해 초. 당시 한교연 대표회장에 양병희 목사가 추대된 후 사석에서 만나 한국교회를 위해 통합을 제안했고, 두 리더는 흔쾌히 손을 잡았다.

그런데 한교연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한기총이 파행운영되는 사이 깊이 뿌리를 내린 ‘이단’ 문제다. 당시 한교연 대표회장 양병희 목사는 “이단 문제가 선결된다면 임기 중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통합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여 한기총은 지난 2014년 12월 “류광수 목사와 박윤식 목사에 관한 한기총 결의사항을 국내 250여 교단과 단체 등에 공문으로 발송, 향후 30일의 기간을 두고 이의제기를 받겠다”고 밝힌 후 “이의신청이 없으면 이단 논란을 종결하고, 이의신청이 있을 경우 재론하겠다”는 뜻을 한국교회 앞에 피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한교연이나 다른 교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기총은 재심을 통해 다락방은 이단이지만, 다락방을 수용하고 있는 개혁은 이단이 아니고, 이단 검증은 교단의 전권이므로 회원교단인 개혁의 결정을 존중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락방을 지지하는 그룹은 “이단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확인한 것”
이라고 기뻐했다. 한교연과 통합을 위해 전격적으로 다뤘던 이단 재검증이 또 한 번의 ‘면죄부’ 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한교연은 결국 “한기총과 통합은 어렵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이단문제 선결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기총의 러브콜은 2016년 조일래 대표회장에게 이어졌고, 당대당 대화가 어려워지자 7개 교단을 중심으로 통합협의회를 구성해 외각에서 압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한교연은 그 압력조차 상당히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기총-한교연, 왜 분열됐나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을 논하기에 앞서 왜 두 개의 단체가 생겨났는지 그 분열의 역사를 먼저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내 연합기관은 진보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보수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두 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두 단체는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다양한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그러나 한기총의 균열은 2010년 대표회장 선거부터 시작됐다. 2010년 한기총 내에서 대표회장 선거 파동이 일어나고, 당시 대표회장 인준거부, 직무정지, 법원의
직무대행 파송 등의 사건이 계속됐다. 이 사건은 한기총 개혁을 촉발시켰지만 개혁이 수포로 돌아가는 광경을 목격한 회원교단들은 탈퇴를 결정하면서 ‘한기총 정상화’를 추진하다가 결국에는 새로운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연합이 출범하게 된다.

한기총 이름으로 통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룹들은 2010~2011년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당시 길자연 대표회장 직무정지 사태 이후 한기총은 어떠한 대화도 중재도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폭로와 보복 등 지난한 싸움 속에서 법원이 대표회장 직무대행을 파송하는 치욕적인 일도 일어났다.

당시 한기총의 갈등은 일반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한국교회 타락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대행 김용호 변호사는 2011년 7월 7일 특별총회를 열고 대표회장 선거 후보 순번제를 담은 정관개정안과 길자연 목사의 대표회장 인준안 등을 상정했다. 개혁의 단초를 마련한 직무대행은 100일 만에 제자리로 돌아갔고, 내부 갈등의 원인이었던 이광선-길자연 목사는 화해를 했다.

그러나 한기총은 불과 두 달 뒤 임시총회를 열어 개혁정관을 폐기했다. 이어 차기 대표회장 후보로 홍재철 목사가 나서자 회원교단들의 불안과 우려는 점점 커졌다. 이 과정에서 다락방이 개혁총회 가입형식으로 한기총 회원이 됐고, 2011년 9월 교단 총회에서는 한기총 파행과 이단 문제 등으로 행정보류와 탈퇴를 건의한 교단
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기총은 이단 해제와 더불어 질서위원회를 통해 이단연구가들을 오히려 이단으로 몰아가는 아이러니한 결정을 하면서 한국교회 전체와 다른 행보를 이어갔다.
외부, 특히 회원교단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기총의 독단과 독선이 심각해지자 2012년 31개 교단과 단체가 ‘한기총 정상화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개혁을 촉구했으며, 이것이 바로한교연의 시초가 됐다.

개혁의 의지 있는지 여부가 관건
당시 31개 교단과 단체는 “7.7특별총회 결의와 정신을 회복해 금권선거를 근절하고 건강한 개혁을 위한 제도와 규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단과 그 연루자를 즉각 제명처리하라”고 촉구했다. 즉, 지금 한교연이 한기총에 요구하는 두 가지 문제 7.7정관의 복원과 이단문제의 해결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2012년 3월 출범한 한국교회연합. 당시 23개 교단과 단체가 창립회원으로 참여했고, 170여명의 총대가 각 교단에서 파송됐다. 한교연은 한기총의 7.7정관을 계승했고, 1년 단임제와 대표회장 교단 순번제, 임원수 축소, 선관위 구성의 객관성 등 개혁안을 수용했다. 한기총의 이단문제를 인식,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대한 공동대처’를 사업의 큰 축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한기총이 하던 사업과 조직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결국 한기총 아류단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2016년 현재 한국교회 연합운동은 기하성 여의도총회를 주축으로 군소교단이 결집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예장 통합 일부 그룹과 대신, 기성 등 중견 교단이 활동하는 한국교회연합으로 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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