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할 때 대가없이 손 내미는 것이 사랑이죠”

장애인을 섬기는 데 일생을 쏟아 부은 사람…윤형영 회장 김성해 기자l승인2016.08.10 15:56:55l수정2016.08.10 16:01l13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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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제 36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한 윤형영 회장은 마음이 어려운 자들이 나를 찾아왔을 때, 이유나 대가 없이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늘 되뇌이며 지내고 있다.

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 윤형영 회장은 이사장, 시설장, 목사 등 다양한 호칭을 갖고 있다. 그만큼 윤 회장이 담당하고 있는 사역이 많다는 의미다. 윤형영 회장은 늘 여러 가지 일정들을 소화하면서도 틈틈이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인 ‘비전하우스’에서 주로 사역한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비전하우스’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입구 건너편에는 밭이 있고, 근처에는 산이 있어서일까. 오염되지 않은 자연친화적인 장소에 우뚝 서있는 ‘비전하우스’는 장애인들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길 바라는 윤형영 회장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은 자
비전하우스에서 윤형영 회장은 또 다른 장애인 사역 회의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비전하우스 시설장, 교회 목사 등 7개의 장애인 사역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장애인들을 섬기고자 노력하는 윤 회장.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장애인 사역을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허드렛일부터 높은 직책의 업무까지 고르게 경험해 본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사하게도 자원봉사부터 평직원, 팀장 등 단계별로 오르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죠, 덕분에 저는 다양한 사역들을 하게 됐고 그 경험들은 제 자산이 됐습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윤 회장은 학창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자연스레 광주에는 그의 친구들이 많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윤 회장의 친구들은 민주화 운동의 주동자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는 서울에 있었다.

친구들이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쳤을 때, 본인이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윤 회장이 내린 답은 서울맹인학교 자원봉사. 시각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그는 장애인 사역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됐고,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하루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색깔’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어요. 난관에 부딪힌거죠. 비장애인들은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늘색이 파란색으로 연상이 가능하지만, 그들은 하늘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역으로 그들에게 물어봤어요. ‘저는 도저히 말로 색깔을 설명할 수 없다. 혹시 당신들이 파란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어떤 시각장애인이 파란색에 대해 ‘더운 여름날, 나무 밑 그늘에 들어갔을 때 시원한 바람이 와서 부딪히는 느낌이요.’라고 설명해줬어요. 충격이었죠. 그 표현이 너무 시적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파란색 같은 거죠. 그 때부터 장애인 복지 사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확고한 의지로 사회 복지까지
윤형영 회장이 걸어온 사역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않는 집안의 첫 번째 기독교인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 할머니의 전도로 가족들 몰래 교회에 나가게 됐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았다. 

제대 후에는 주변의 목회 사역 권유를 여러 번 받은 뒤에서야 신학에 뜻을 굳힌 것. 그러나 뼈대 있는 집안의 장손이자 장남인 윤 회장이 목회의 뜻을 밝혔을 때, 가족들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신학대에 처음 합격을 했을 때 저희 부모님은 학교에 등록 할 수 없게 하셨어요. 두 번째엔 입학은 허락해 주셨지만 등록금이나 학비는 일절 지원해주지 않으셨죠.

하지만 하나님이 저를 이 길로 불러주셨기 때문에 제 삶이 결코 엎어지지 않을 것을 믿었고, 당시에 저는 단순히 목회만 하겠다기보다는 장애인 복지 사역을 함께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부모님도 저를 대견하게 생각해주시고 응원해주십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했던 시간은 단 1학기. 남은 학기들은 장애인 봉사활동에 더욱 열중했다. 아니면 사회복지학과에서 강의하는 수업들을 청강했다. 윤형영 회장은 장애인들을 잘 알아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윤 회장의 결심은 완고했다. 

“제가 워낙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어서인지, 학과 교수님들, 학우들과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었어요. 고맙게도 ‘쟤는 원래 저런 사람이다’라며 내버려두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따돌림일수도 있으나, 저는 오히려 그게 더 편했어요. 더욱 맘 놓고 봉사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워낙 긍정적인 마음이라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장애인 사역에 헌신하는 사람
윤 회장은 비전하우스 시설장 외에도 사회복지법인 희망나누리, 시흥시사회복지사협회, 시흥시장애인시설협의회, 사단법인 한장선 희망선교회, 희망인성결교회 등에서 이사장, 회장, 대표, 목사직을 맡고 있다.

그는 여러 가지 많은 직책을 맡고 있는 것에 대해 큰 어려움은 없지만 간혹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차별을 받으며 사역에 제한을 받는 순간도 있었다.


“흔히 장애인 사역을 맡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떤 일을 하든 누구에게나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장애인들이 저를 향해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고충을 100%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배척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들을 돕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속상하죠.”


윤 회장은 사역을 하면서 장애인들을 더욱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복지, 특수교육과 같은 부분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의 방에 놓친 책꽂이에는 사회복지, 특수교육과 관련된 서적들이 즐비했다. 

“중증이라는 단어는 장애 1,2급을 가진 사람들에게 붙는 단어인데, 그들이 겪고 있는 장애의 차이도 각각 다릅니다. 보조가 필요한 사람, 대화가 불가한 사람, 대화가 가능하고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 등으로 나뉘지만 보편적으로는 장애가 심한 사람들을 뜻하죠. 장애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알맞은 교육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었어요.”

이처럼 장애인 사역에 온 정신을 쏟아부으며 사역하던 윤형영 회장은 지난 4월 열린 제36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따뜻한 밥 한 술 같은 사람
윤형영 회장은 장애인들의 복음화율이 비장애인들보다 굉장히 뒤쳐진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들의 인원수를 추정한 통계가 시설별로 큰 차이가 있지만, 적게는 250여만 명, 많게는 500여만 명으로 추산한다. 그 중 2만여 명만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장애인들 중 5%만이 기독교인이라는 뜻이다. 

윤 회장은 장애인들의 마음이 어렵고 삶이 힘들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욱 복음이 필요하지만 교회에서 발생하는 차별로 인해 또 다시 상처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출애굽기 4장 11절 말씀은 장애인도 하나님이 창조하심을 깨닫게 해주는 구절입니다. 결국 장애인도 구원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죠. 그들이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비장애인들이 그들에게 던지는 차별이 큰 원인입니다.

자신과 그들이 같은 구성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차별인 것이죠.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며, 복음을 전도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윤형영 회장은 늘 기도한다. 마음이 어려운 자들이 나를 찾아왔을 때, 이유나 대가 없이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지금도 잊지 않도록 항상 되뇌면서 살아오고 있다.

“제가 그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행복할 때 나를 찾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살다가 사람이 한번쯤은 정말 힘들 때가 있을 때 나를 찾아주면 내가 여건이나 능력이 돼서 해결해 줄 수도 있거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내가 많이 들어주겠다. 그리고 밥 한 끼는 따뜻하게 사주겠다. 그러니 힘들 때 찾아달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들에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요.”

김성해 기자  shkim@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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