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와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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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와 희생
  • 승인 2003.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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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교 여행을 좋아한다. 선교지에 가면 내가 보고 싶은 민족을 볼 수 있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심장을 소유한다는 것이 행복할 뿐이다.

내가 만난 소수 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한국을 소개하기도 하면서 선교현장의 효율적인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결과는 선교 현장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지난 여름 태국의 동북쪽 치앙라이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넝 마을이란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라오스와 인접한 국경지역으로 해발 1680m가 되는 곳이다.

이곳은 주로 중국에서 넘어 온 소수 민족들로 구성된 마을이다. 전통적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종족간의 정이 가득 담긴 마을 공동체로 형성되어 있다. 내가 넝 마을을 가게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보다는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 때문이었다.

넝 마을로 가는 길은 경사진 길로 약 40분은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곤 다시 언덕길로 걸어 올라가야 겨우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새롭게 단장한 교회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지만 가는 동안 화전민들로 구성된 마을이란 것을 느끼게 한다.

굽이진 언덕길 그리고 산언덕 아래로 화전민들이 농사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가 있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그 옆으로 대나무 밭이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보게 된다. 대나무 밭을 지날 때 우리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서 성장하는 대나무는 한국의 대나무와 특별한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길 옆으로 뻗어 있는 대나무들은 바람에 휘날려 휘어진 듯하지만 그래도 주체가 분명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다. 태국에 있는 대나무들은 군집을 이루어 성장한다.

그러다 보니 크게는 2m가 넘는 군집을 이루는 것들이 여러 곳이 눈에 띈다. 이러한 대나무들의 특색은 중앙에 있는 것은 가장 작고 옆으로 퍼지면서 크기가 굵어지게 되는데 그 원인은 어머니 순(筍)이 먼저 뿌리를 내리면서 자신은 죽어가면서 새끼 대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새끼 대나무는 어머니 대나무 보다 키와 통이 더 크게 되는데, 이는 새끼 대나무가 자라기 위해 엄마 대나무가 희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상태로 성장하는 나무는 바나나이다. 바나나는 뿌리로 자기의 생명을 계속 연장하는 식물이다. 한 번 열매를 맺으면 죽고 새로운 순이 자라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는 희생 후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대나무와 바나나 비유를 보면서 오늘을 사는 사회와 현대인들의 생리를 지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섬기거나 희생을 하지 않고 성공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나무 처럼 자신을 희생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사회,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사회가 오늘의 사회이다.

대나무와 바나나는 분명 자신을 희생함으로 다음 세대에 더 큰 나무를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오늘의 기독교도 이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문화부재, 기독교 신앙문화를 개발하라고 아우성을 치는 때에 지역사회와 문화를 주도하는 교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이제 우리는 대나무에 대한 순(筍)번식 원리처럼 기독교인의 희생과 겸손이 또 다른 공동체와 순(筍)을 성장시킨다는 원리를 발견하고, 예수를 높히며,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고, 신실하고 계속적인 기도에 열심을 내면서 실천하는 것만이 다음 세대를 흥하게 할뿐임을 기억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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