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와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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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와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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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0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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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 / 춘천동부교회

오래전 독일에 머물 때 한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몇 가지 교정할 부분이 있는데 전문가에게 부탁을 하여 교정을 잘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많은 부분이 다름 아닌 쉼표와 마침표의 사용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정말이지 글을 쓸 때 내용 못지않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쉼표와 마침표의 사용입니다. 노랜 또 어떻습니까? 노래할 때도 숨표가 중요합니다. 분명 이 부분은 숨을 쉬지 않고 길게 소리를 내야 하는데 때로 숨이 차서 멈춥니다. 또 어떤 부분은 소리를 멈추고 숨을 쉬어야 하는데 혼자 길게 소리를 내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쉼표와 마침표를 잘 찍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훌라후프에 빗대어 생각해봅시다. 저마다 정신없이 훌라후프를 돌리다 어느 날 훌라후프가 멈춥니다. 우리는 이를 죽음이라, 실패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 멈춤은 결코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주님의 관점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며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으며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예수님은 항변하는 베드로를 보며 사탄이라고 부를 만큼 그 발언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이미 마침표로 생각하고서 주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멈추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그 일은 결코 마침표가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살아 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나사로가 덜컥 병에 들자 자매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병들었음을 알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시고는 바로 오시질 않습니다. 그러던 중 나사로가 죽고 맙니다. 예수님이 계시던 곳은 나사로가 살던 마을 베다니에서 고작 5리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예수님이 오시지 않는 사이 오라버니가 죽고 나니 많이 서운하고 억울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마르다는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나사로가 이미 죽어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무덤’, ‘나흘’이란 장소와 시간은 우리에게 충분히 인생의 마침표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명백히 그 인생은 마침표를 찍은 것인데 주님은 달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죽어 누워있던 나사로에게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십니다. 이미 죽은 자였는데,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까지 나고 있었는데, 그런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일어나 나옵니다. 당연히 많은 이들이 놀랐습니다. 이 일이 바리새인들에게 알려지자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까지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이런 일을 행하시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 인생의 쉼표와 마침표에 대해 분명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쉼표의 때와 마침표의 때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음을 말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뜨거운 태양 아래 놓인 이 여름이 쉼표에 해당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하반기 더 힘찬 도약을 위하여 육체도 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인생의 쉼표와 마침표를 생각할 때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쉼표의 때와 마침표의 때를 잘 지도해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삶의 어떤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함부로 쉼표와 마침표를 재단하지 맙시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쉼표와 마침표 찍는 법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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