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다(주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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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다(주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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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0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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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종 목사/백석대 총장

고린도전서 16:22에 보면 “주여, 오시옵소서”로 번역될 수 있는 아람어 문구 “마라나다”가 나타난다. 이 문구는 사도들의 문집으로 알려진 디다케 16:6에도 나타나고, 이 말의 헬라어 번역이 계시록 22:20에도 나타난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호칭인 아람어 “아바”가 초기 기독교 안에 널리 사용되어졌던 것처럼(롬 8:15, 갈 4:6), “마라나다”가 초기 기독교 안에 널리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초기 기독교공동체가 유대교나 로마제국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인해 자주 생명의 위협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초기 기독교신자들이 신앙고백처럼 자주 “마라나다”를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마라나다”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초기 기독교신자들의 강렬한 기대감만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물론 “마라나다”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심판과 구원의 완성을 위해 다시 오시는 재림 주이실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그의 오심을 사모하는 자에게 다시 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이시기도 하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과 구원을 위해 종말에 다시 오실 분이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할 때 그들 가운데 항상 임재하시는 분이시며(마 18:20), 세상 끝날 까지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시는 분(마 28:20, 요 14:18)이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고 고백할 수 있었다.

    인류의 구속사역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의 약속대로 최종적인 심판과 구원의 완성을 위해 다시 오실 분이실 뿐만 아니라, 말씀과 성령을 통해 그의 오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항상 오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초기 기독교신자들의 “마라나다”의 고백에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한국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도, 그의 지속적인 임재에 대한 기대도 점점 약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 갱신과 부흥을 위해 다시 한 번 초기 기독교회처럼 “마라나다”의 간절한 고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마라나다, 주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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