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회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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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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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Sunni)
수니파는 정통파라고도 한다. 수나(Sunna:관행·규례)를 지키는 사람들의 파를 말하며, 시아파가 형성된 뒤 이슬람 공동체 안에 전통적 행동양식을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시아파 교도가 이란을 중심으로 약 3∼4천만 명이 되는 데 비해, 수니파 교도의 수는 약 4억으로 아랍·이집트·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이슬람권의 주요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시아파 형성이 마호메트의 후계자인 칼리프 알리(재위 656∼661) 및 그 후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에 바탕을 두었듯이, 이들의 형성에도 칼리프 제도의 확립과 보유, 아랍 민족의 우월권 확보와 같은 정치적 이유가 작용하였다.

그러나 마호메트의 사후 그의 사위이자 사촌이었던 알리를 추종하는 시아파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고 비합리주의적인 신학을 발전시켜 간 데 비해, 이 파에도 일탈과 혁신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정통파 신학이 나타나 많은 법학자·신학자가 수니파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 대표적 신학자가 알 아슈아리와 알 가라리이다. 이 파의 연구 중심지는 아바스왕조에서는 바그다드였으나, 1258년 이곳이 몽골군에게 정복되고 아바스왕조가 멸망한 뒤로는 카이로의 아즈하르대학교(972년 설립)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아파
이라크 인구 2천4백만명 가운데 60%를 차지하는 다수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소수 수니파 정권인 후세인 통치 시절에 푸대접을 받으며 반체제 세력으로 몰렸다. 시아란 분파라는 뜻으로 수니파(정통파) 이외의 분파를 총칭한다. 교조 마호메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 후계를 둘러싸고 대립이 시작되면서 시아파가 생겨났다.

알리의 후계자 승계는 메디나에 있던 그의 일당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곧 시아파는 교리를 만들었으며 그들의 교리는 보다 폭넓은 인식을 받아들였다. 시아파는 모하메드가 사실은 후계자를 지명했으며 그 사람은 바로 알리라고 믿었다.

알리와 그의 동료들은 선거제를 통하여 예언자의 후계자를 선출하는 행위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이것이 무슬림 다수파로부터 시아파를 분리시키게 된 바로 그러한 반란이었다.

그들은 코란의 가르침과 이슬람의 성스러운 율법이 인간을 뛰어넘는 곳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인간 이성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슬람 계시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맘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권위자가 필요하다고 시아파들은 인식했다.

이처럼 시아파 이슬람은 2개의 주요 분파 중 보다 급진적이고, 여러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차기 ‘이맘’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특별한 주의로 무슬림들을 재통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불행히도 이것은 ‘지하드’로 자주 표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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