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종교개혁의 뿌리는 ‘스위스’…신앙의 역사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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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종교개혁의 뿌리는 ‘스위스’…신앙의 역사 돌아보자
  • 김성해 기자
  • 승인 2016.07.2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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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2017년일까 2019년일까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1년 앞두고 ‘한국 장로교의 종교개혁 500주년은 2019년’이라는 의견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4월 독일과 스위스에 있는 종교개혁 현장을 다녀온 백석대학교 주도홍 교수(사진)는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신학과의 페터 오피츠(Peter Opitz) 박사와의 만남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밝혔다. 장로교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왜 2019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직접 주도홍 교수를 만나봤다.

“스위스의 종교개혁 500주년은 2019년”
종교개혁지 탐방을 위해 스위스를 방문한 주도홍 교수는 오피츠 박사와 종교개혁 500주년에 대해 담소를 나눴고, 여기서 스위스와 독일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연도의 차이를 발견했다. 당시 오피츠 박사는 “스위스의 종교개혁 500주년은 2019년이다. 독일의 종교개혁과 스위스의 종교개혁은 별개 사안이기 때문에 2017년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주도홍 교수에게 “한국 개신교는 스위스의 종교개혁과 교리가 맞는데 왜 독일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냐”고 되물었다. 주 교수는 “오피츠 박사의 질문을 통해 장로교의 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독일과 스위스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가 다른 이유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역사적인 분위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 루터가 중세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며 붙인 95개조 반박문

종교개혁 발생의 원인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에 붙이기 전, 당시 독일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중세 로마 교회를 향해 거부 반응이 강했다.

당시 로마 교회는 십자군 전쟁, 혹은 로마에 바치는 상납금 등으로 인해 힘이 약화되고 결속력이 없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 교회는 신자들에게 십자군 전쟁세와 같은 각종 세금성 헌금을 걷었다. 여기에 면죄부 판매까지 벌인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을 초래하게 됐다. 


주 교수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각국은 로마 교회를 강하게 거부하는 추세였다”며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시점으로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등에서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인 1519년, 스위스에서도 츠빙글리의 신약성경 강의를 통한 종교개혁이 시작됐다. 1506년 9월부터 목회를 시작했던 그는 1516년 아인지델른으로 옮겨 사역을 이어갔다.

츠빙글리는 아인지델른에서 설교자로 사역하면서 로마 교회를 비방하는 설교를 했고, 그 곳에서 헬라어 신약성경을 위시한 저술들을 접하게 되면서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된다. 1519년, 독학으로 어거스틴과 바울 신학을 접하면서 종교 개혁의 길로 들어섰고, 1522년 최초로 로마교회 교회법과의 단절을 이끌어냈다.

츠빙글리는 1523년, 교황주의자들과 공개 토론을 공회 앞에서 열었고, 67개 조항으로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이후 공회는 츠빙글리의 입장을 지지했고, 이후 스위스의 교회 개혁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 츠빙글리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빌트하우스

독일과 스위스의 갈라짐
독일의 루터와 스위스의 츠빙글리의 관계가 처음부터 대립관계는 아니었다. 1518년, 츠빙글리의 동료들 사이로 루터의 종교개혁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츠빙글리에게 루터는 감동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1519년, 루터가 아직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적그리스도로 일컫지도 않았을 때,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입각하여 교황의 오류와 잘못된 인간적 전통들을 비판했다. 이후 츠빙글리는 “우리는 루터적이 아니라, 우리는 복음적이다”라는 말로 루터와의 신학적 독자성을 강조했다.  

루터와 츠빙글리의 대립관계의 핵심은 1529년 개신교의 연합을 위해 개최된 마부르크 종교 회의에서 주요 논쟁이 된 성만찬이다. 그동안 로마 교회는 성만찬을 대할 때,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강조했다. 반면에 루터는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지만 성만찬에서 그것들을 대할 때,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는 ‘공재설’을 내세웠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1장을 근거로 하여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죄의 대속물로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설’을 주장했다. 

종교 회의에서 각 종교개혁을 통해 주장하는 교리의 차이점을 확인한 뒤 루터는 츠빙글리를 이단처럼 여겼다. 하지만 츠빙글리는 루터를 적대시하기보단 로마를 대적하는 ‘복음의 대변자’로 생각했다.

주 교수는 “1529년 마부르크 종교 회의에서 성만찬에 대한 토론이 끝난 후, 츠빙글리가 아쉬움을 토로하며 루터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루터는 ‘당신과 나는 다른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며 “이는 곧 ‘당신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은 다르다, 당신은 이단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종교 회의 이후 루터와 츠빙글리가 갈라서기 시작한 것이다.


장로교 종교개혁 500주년의 방향
주 교수는 “오피츠 박사의 주장대로 장로교 신학의 교리를 살펴본 결과 독일의 종교개혁보다는 스위스의 종교개혁 교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성만찬을 예시로 보더라도 루터의 교리보다는 츠빙글리의 교리가 더욱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장로교의 신학과 정체성은 스위스 개혁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1517년 종교개혁도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중세를 마감함과 동시에 새로운 역사의 전환점을 가지고 있기에 큰 의미가 있다는 것.

이미 장로교는 몇 년 전부터 2017년을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기념하며 준비해왔다.

주 교수는 “당장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를 2017년에서 2019년으로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스위스 개혁교회와 유대관계를 갖고 국제적인 수준을 가지면서 2019년 스위스 종교개혁 500주년을 함께 맞이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과제”라고 제안했다.

주도홍 교수는 또 “무엇보다 장로교의 참된 교리이자 신앙의 뿌리인 스위스 종교개혁의 교리와 그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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