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아름답게 지어지는 모습만으로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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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아름답게 지어지는 모습만으로도 행복했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6.07.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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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CEO 서희건설 회장 이봉관 장로

“이놈아! 네가 그렇게 게으르니까 그렇게밖에 못 사는 거야! 당장 들어와서 일을 하든가 집으로 가든가 해!”

연 매출 1조5천억 원 규모의 국내 30대 건설회사 반열에 오른 서희건설 회장 이봉관 장로(청운교회)의 유년시절은 혹독했다. 농사라고는 모르는,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어린아이가 들어야 할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논에 들어가야 할 나이도 아니었다. 서러웠다. 그러나 들어가야만 했다.

이것이 평양에서 부잣집 외동아들로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월남한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가난하게 성장했던 이봉관의 유년시절이다. 학교는커녕 동네 머슴들과 함께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새끼를 꼬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남한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가혹했지만 신앙의 끈만은 놓지 않았다. 이 때문일까. 이 장로는 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 기업은 이윤을 내는 곳이지만, 수익이 적더라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적 귀감이 되는 기업문화를 창출하는 것 또한 서희건설의 지향점임을 이 회장은 강조한다.

“내가 농사짓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공부를 하게 된 것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만약에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영원히 농사꾼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한글을 깨우쳤고, 성경을 배워 사물의 이치를 알아가면서 농사일을 계속했다.”

어린 이봉관에게 교회에 가는 것은 유일한 낙. 교회에서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산상수훈을 모두 암기해 성경암송대회에서 상도 탔다. 학교에서는 한 학기 만에 우등생이 됐고, 전교 어린이회장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봉관은 새벽 일찍부터 작은 댐 공사장에 가서 자갈을 캐는 일을 해야 했다.

배움에 목마른 이봉관이 계속 공부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사람은 레이몬드 프로보스트 선교사. 하지만 중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은 혼자 힘으로 다녀야 했다. 4년 내내 고통은 따라다녔고, 욥의 절규가 생각날 만큼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주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때가 이때였다. 그 절망감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이봉관을 버리지 않으셨다. “어떤 환경이라도 내가 함께해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강하게 위로하고 격려하셨다.

# 교회 건축은 손해가 발생해도 깨끗이 감수

대학을 졸업한 이 장로는 포스코(POSCO) 공채 2기로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교사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고, 예쁜 세 딸도 낳았다. 2년 동안의 연구와 기도 끝에 13년 동안 근무했던 포스코를 퇴사한 이 장로는 물류업에 뛰어들었다. 그때가 1983년, 화물차 20대 규모였다. 많은 물류업체들이 노사분규로 문을 닫았지만 이 장로의 회사 구성원들은 열심히 일했고 믿고 따라주었다. 이 장로는 이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을 가슴에 담고 있다. “저를 믿고 열심히 일해 준 기사들, 직원들,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며 눈물겹게 감사한 분들이다.”

▲ 이 회장은 건물의 가치보다 성도들이 서희건설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더 큰 은혜라고 말한다.

서희건설은 11년 후인 1994년 시작됐다. 교인들에겐 ‘교회 짓는 건설사’로 더 친숙한 회사. 다른 건설사들이 기피하는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틈새시장을 노린 이 회장만의 전략이었다. 교회, 학교, 병원 등은 건설 규모가 크지만, 난이도가 높은 데다 시공과 관련해 발주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많아 건설사들로서는 썩 달가워하지 않는 일. 하지만 이 회장의 판단과 신앙은 새로운 블루오션의 길을 열었다. “힘들고 손해 보는 교회 건축에 순종하자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졌다. 건설회사로서는 유일하게 전국에 대형 교회 40여 개를 건축해 방방곡곡에 십자가를 세웠다.”

이 장로가 교회 건축을 우선순위에 두고 마다하지 않는 것은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신앙고백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를 건축할 때 불협화음이 없이 조용하고 은혜롭게 세우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하고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깨끗이 감수하라”는 직원들에 대한 당부는 늘 따라붙는다.

이런 이 회장의 신앙을 기반으로 서희건설은 창립 이후 단 기간에 매출 1조5천억 원 규모의 건설업계 30위 규모로 탄탄하게 성장했다. 지금도 매년 시무식 때는 목사님을 모시고 시무 예배를 드린 후 업무를 시작한다. IMF 사태와 리먼브라더스 사태, 유럽 발 금융위기 등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33년 동안 굳건히 견디게 해주셨고, 매출 1조5천억 원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다.”

# 정직한 기업만이 미래가 있다

이 장로는 교회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하지만 부자로서의 노블레스만을 누리기 위한 기도는 아니다. “부자가 횡포를 부리지 않는 모범을 보이겠습니다”라는 기도가 늘 따라 붙는다. 오블리주 또한 철저하게 하겠다는 신앙의지의 표현이다.

▲ 이봉관 회장은 인생의 힘든 순간마다 함께하신 하나님께 대한 고백적인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문들을 모아 'CEO의 기도'를 출간했다.

기도할 때면 늘 ‘참 좋으신 하나님’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인생의 힘든 순간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적인 기도다. “하나님은 내가 힘들 때마다 위로하셨고, 힘과 용기를 주셨다. 내가 하나님을 통해 이렇게 삶에서 특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남다른 신앙심은 경영방침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 외형보다는 내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영속 기업을 지향한다. “빨리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보다는 끈기 있게 노력해 천천히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을 선호한다. 무리하고 위험성 높은 사업은 하지 않는 게 기본철학이다. 어린 시절부터 끈기 있었던 내 성격이 기업을 경영하면서 자연스레 경영방침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지난 2005년에는 임직원 봉사활동 모임인 ‘새둥지봉사단’을 발족했다. 노인요양시설인 정애원 목욕봉사, 사업장 인근 지역 청소와 제설작업, 사랑의 식당 봉사 등 그 섬김의 범위를 확대해 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은 이윤을 내는 곳이지만, 수익이 적더라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귀감이 되는 기업문화를 창출하는 것 또한 서희건설의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전 건축에 대한 이 회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성전을 짓는 귀한 일에 부도덕하거나 편법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정직한 기업만이 미래가 있다는 서희건설의 비전을 고수하며 교회 건축을 해왔다. 단순히 건물의 가치보다도 성전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우리 회사를 위해 기도해주는 더 큰 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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