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다리 보험왕’, 주님 만난 후 ‘외다리 전도왕’ 꿈꾼다

원불교 법사에서 목사가 된 이야기 이성원 기자l승인2016.06.08l수정2016.06.10 10:46l1345호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파란만장하다’는 말이 이처럼 딱 맞는 사람이 또 있을까.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찌어찌 공부하여 사무관이 됐는데, 뺑소니 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표창 던지기를 연마하며 복수를 꿈꾸던 그는 다시 일어나 ‘외다리 보험왕’ 타이틀을 붙일 만큼 성공했는데, 이번엔 편도암 4기.

그 와중에 하나님을 만난 그는 원불교 법사를 내려놓고 신학생이 됐다. 지방 병원에서 수술로 피 묻은 몸을 이끌고, 또 4박5일 항암제를 맞고도, 서울에 있는 신학교 강의실을 찾았다. 이런 지독함이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고난수업’의 저자 조용모 목사(해피라이프개발원 원장)의 이야기다.

목사가 된 이제 그의 눈에는 독기가 없다. 늘 은혜의 강이 흐른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여태껏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 또 눈물샘이 터진다. 누군들 독하게 살고 싶을까. 그렇게 살아야만 생존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 지독한 가난과 뺑소니 사고로 인한 지체장애, 편도암 4기의 중병 등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외다리 보험왕’란 별명을 얻으며 세일즈 신화를 써내려갔던 조용모 목사는 하나님을 만난 후 원불교 법사를 내려놓고 이제 목회자가 되어 ‘외다리 전도왕’의 꿈을 꾸고 있다.

뺑소니 사고로 망가진 인생

“그땐 다 그랬죠. 가난해서 학교 수업료가 늘 밀리면, 엎드려뻗쳐 맞고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일어나라, 부모님 모시고 와라, 그래요. 그럼 돈 벌러 가셔서 못 오신다, 그러죠. 그러면 또 때려요. 공부에 대한 한이 좀 맺혔죠.”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데, 공부 잘하는 것만이 살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판검사가 되어 억울한 사람 구하며 당당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책 살 돈이 없어 서점에 가서 공짜 책을 좀 봤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주인 할머니가 쫓아내려고 하자, 사정사정했다. ‘이런 봉이 김선달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던 할머니는, 그 후로 후원자가 됐다. 고시계 같은 법률 잡지도 챙겨줬다. 그 서점에서 청소도 해주며 책을 읽던 그는 사무관이 됐다.

“직장생활하면서 야학을 만들어 가난한 아이들 공부를 시켜줬어요. 그런데 그날도 가르치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겁니다. 뺑소니를 쳤어요. 눈을 떠보니 다리가 깨졌더라고요. 지체장애 3급이 됐고, 직장에 갔더니 권고사직 처리를 해놨습니다.”

영등포역 주변을 배회하며 늘 이홉들이 소주를 끼고 살았다. 우연히 만난 털 복숭이 개를 안고 자면 따뜻했다. 그나마도 누가 잡아먹어버렸다. 더 이상 지쳐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고향으로 내려갔다. 죽더라도, 고향에 가서 죽자는 마음이었다.

“목발 짚고 거지 행색으로 온 저를 보고 어머니는 물론 식구들이 다 놀라 넘어졌죠. 동네에선 ‘누구 둘째 아들 버렸다’고 혀 차는 소리에 귀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대장간에서 표창을 만들어서 맨날 방안에서 그걸 던졌죠. 내 다리 이렇게 만든 놈 만나면 죽인다고요.”

맘속에 있던 분노는 차츰 그 자신을 죽여 갔다. 80알 수면제로 인생을 끝내려 했는데, 모진 목숨인지 다시 눈을 떴다. 병원에서 어머니가 3일 동안 간호해서 살아났다고 했다. 다시는 어머니 눈에 이슬 맺히게 하지 말자는 맘을 먹었다.

“취직자리를 찾아봤어요. 근데 누가 절 써주겠습니까. 109번째로 찾아간 게 신동아보험회사였어요. 목발 짚고 면접장에 들어갔더니 면접 보던 분이 제 이력서를 찢어버리더라고요. 그때 이를 갈았죠. 당신 나를 다시 보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와서 들어간 곳이 동부화재에요.” 

겨드랑이에서 피가 나도록

한 발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하루 명함 50장을 보험 5건과 바꾸겠다는 목표로 도시락 두 개 싸서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한발로 타는 자전거로 200리길을 돌아다니다 집에 오면 발에 쥐가 났다. 승강기가 희귀하던 시절이었다. 목발 짚고 4, 5층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겨드랑이에서 피가 흘렀다. 밤 12시가 넘도록 깨금발을 짚어가며 명함을 돌렸다.

“3년 만에 우리나라 최고의 보험왕이 됐습니다. 누가 ‘외다리 보험왕’이라고 별명을 붙여주더라고요. 여기저기서 저를 스카우트 해 가려고 했죠. 신동아에서도 제의가 왔어요. 그래서 그때 저를 모욕한 부장님이 찾아와 사과하면 가겠다고 했죠.”

사무실 옆 다방에서 그를 만났다. 난처한 얼굴로 ‘죽을 죄를 졌다’는 그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때 저를 받아주셨더라면 말단 직원으로 들어갔을 텐데, 안받아주셔서 제가 과장대리로 입사하지 않습니까?”

입사 15년 만에 사장이 되겠다는 야망은 그를 더욱 채찍질했다. 이를 위해 남들이 기피하는 길을 도전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영업소를 만들어 6년 만에 8개를 분할했다. 80년 보험 역사에 이 기록을 깬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 업계에선 ‘보험의 신’으로 불렸다.

“모두 다 익산에선 조용모가 지점장이 될 줄 알았는데, 윗사람이 새로 바뀌면서, ‘지팡이 짚은 놈을 누가 지점장으로 시키나’하며 또 저를 내친 겁니다. 소주 병나발을 불고 나와 버렸죠. 건너편에 있던 제일화재 회장실로 다짜고짜 들어갔어요. 제 이력서 주고 저 지점장 하나 달라고 했죠. 며칠 뒤 주겠다고 연락이 왔고요. 이틀 만에 익산에 지점을 세워줬습니다. 7월 1일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첫 달 38개 전국 지점 중 2등, 그 다음 달부터 1등을 했습니다.”

보험영업으로 유명해진 그는 신문 사회면에 ‘외다리 보험왕’으로 매스컴을 타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각종 방송과 강연에 불려 다녔다. 보험 세일즈 하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 높은 강연료를 받으며 자동차 두 대에 기사 둘 놓고 하루 많을 땐 ‘4탕’까지 뛰었다. 돈을 쓸어 담았던 시절이었다.

‘용모야, 너 이제 본업을 해야지’

“그런데요, 그때 우울증이 왔어요. 집에만 오면 문을 잠그고 목욕탕 물을 철철 흘러넘치게 받고요, 칼을 들고 손목을 보면서 이러는 거예요. ‘여기 한번 따볼까, 피가 다 빠질 때쯤이면 기분이 좋다는데’, 이러는 거예요. 그때 제가 원불교 법사까지 받은 때였거든요.”

원불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동쪽으로 갔다면 서쪽으로도 한번 가볼까?’ 신학교를 한번 가볼까? 예수 철학은 뭘까?

“사실 그전에도 제가 보험 교육을 하거나 강연을 하면, 목사님 설교를 듣는 것 같다, 우리 교회 목사님보다 더 설교를 잘하신다, 목사님이 되셨더라면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하셨겠나,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제 맘을 움직인 거죠.”

보험영업소장으로 있을 때, 선물 받은 그랜드, 라이프 가죽성경 두 권을 꺼냈다. 먼지를 털었다. 23년 후에 그 성경책으로 공부하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3학년으로 신학대학에 입학한 그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 편도암 4기 진단을 받은 겁니다. 기가 막혔죠. 왜 또 내게 이런 일이 생기나. 4명의 의사가 붙어서 22시간 수술을 했어요. 이틀째 의식을 찾으며 하나님을 영접했죠. 주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 이제 본업을 해야지.’ 목사의 소명을 받은 겁니다.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항암제 며칠 받고 힘든데도 수업하러 갔어요. 그렇게 수업시간이 재미있는 거예요. 공부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다 낫게 해주시더라고요.”

올해 정초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년대부흥회에서는 내적 치유와 영성회복을 위한 강사로 초빙을 받아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이사장:이선구 목사) 산하의 사랑나눔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그는 노숙자들을 섬기며 영과 육의 양식을 나누고 있다.

“언젠가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누가 저를 찾아와 그래요. ‘원장님 때문에 힘들었다’고요. 알고 보니 제가 전주 익산에서 보험할 때에 저 때문에 고생했던 상대 보험회사 지점장들이었어요. 제가 워낙 잘하니까, 목발 짚은 사람도 못 이긴다고, 저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고 그러더군요. 미안했습니다. 내가 죄를 참 많이 졌다고요. 이제는 모든 사람들을 일등 만들어 드리고, 뒤에서 박수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외다리 보험왕’은 이제 없다. ‘외다리 전도왕’이 있을 뿐이다. 보험 세일즈를 하며 쌓은 노하우를 전도에 적용해서 나누고 싶다. 그 많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고. 보험으로 안 되는 진짜 ‘구원’의 길을 보여주겠다고.

이성원 기자  jos33@hanmail.net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제호 : 기독교연합신문사 아이굿뉴스 |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 118 | 전화번호 02)585-2751~3 | 팩스 : 02)585-6683
인터넷신문등록번호:서울아04554 | 등록일자 : 2017년 6월 2일 | 발행인:장종현 | 편집인 이찬규 | 청소년보호책임자:이인창
Copyright © 2017 The United Christian Newspap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goodnews@igoodnews.net
아이굿뉴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