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당 없던 시골에 십자가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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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 없던 시골에 십자가를 세우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6.06.02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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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을 교회로 써서 되레 감사…내 마음 빈 집도 주님께 드려

동국대 경영학부 권익현 교수

시골의 빈 집을 교회로 선뜻 쓰도록 해주고 폭풍으로 지붕이 날아가자 그 수리비까지 대준 미담이 있어 주변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동국대 경영학부 권익현 교수(양재 온누리교회 출석).

현재 춘천시 동산면 조양리 권 교수의 시골집에서 ‘고향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목회를 하고 있는 김성진 목사는 “권 교수님이 아무런 돈이나 세를 받지 않고 그 집을 교회로 사용하게 해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며 “지난 번 바람이 크게 불어 지붕이 날아갔는데 그 수리비까지 전액 부담해주어서 말할 수 없이 고맙다”고 알려왔다.

그전까지 이곳 마을에 교회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권 교수의 시골집이 교회로 쓰이게 된 게 더욱 뜻 깊다. 교회가 없는 가구 수 70호 이상 농어촌 마을에 교회 세우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 목사(행복한 선교회 이사장)가 권 교수의 빈 집을 알게 된 건 5년 전쯤이다.

▲ 자신의 시골집을 교회로 사용하게 하고 최근엔 폭풍으로 날아간 지붕까지 수리해준 권익현 교수는 신앙생활을 한지 10년 밖에 아직 안됐지만 삶의 현장에서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다. 요즘 성경필사의 재미에 푹 빠져있는 그는 주변에 아직 교회 다니지 않는 이들을 위해 늘 기도한다.

계속된 하나님의 ‘노크’에 응답

“그동안 외국인 근로자들을 섬기고 필리핀에 교회를 세우기도 했는데요, 은퇴 후엔 외국인 선교만 할 게 아니라 교회가 없는 우리나라 시골에 교회를 세우자는 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이곳도 교회가 없던 곳인데, 권 교수님의 빈 집을 교회로 쓰고 싶어 연락하게 됐습니다.”

그 집은 권 교수가 정년퇴임 후에 쓰려고 마련한 집이었다. 어느 날 김 목사로부터 그 시골집을 교회로 쓰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건 도리어 하나님의 선물 같은 제안이었다.

“제가 10년 전 쯤부터 교회를 다니게 됐는데 아내가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아서 교회의 공동체 생활이나 봉사활동에 늘 부족하다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골집을 교회로 쓰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오히려 감사했죠. 아, 하나님께서 제 부족한 봉사의 부분을 이렇게 채워주시려고 기회를 주시는구나 하고요.”

아내와 상의한 끝에 흔쾌히 시골집을 교회로 사용토록 했다. 그 후 종종 시골집을 방문하면 십자가가 달린 교회당이 그를 반겼다. 안에 강대상과 교회 시설이 아담하게 잘 마련된 걸 볼 때마다 뿌듯한 기쁨이 있었다.

김 목사는 “교인이 그동안 몇 늘어서 행복하게 예배드리고 있는데, 특히 밤에 교회 가서 십자가를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외로웠는데 네가 왔구나’하고 반겨주시는 것 같다”면서 “권 교수님처럼 시골의 빈 집들을 교회로 사용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권 교수, 재직하고 있는 학교도 불교재단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전에도 하나님은 몇 차례 그의 마음을 노크하셨다.

“군대생활을 할 때에 새벽마다 일어나 기도하던 후임병이 있었는데 저보고 ‘권 병장님을 꼭 교회 데리고 가고 싶은데, 권 병장님은 제가 가자고 해서 갈 분이 아닌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 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도 후배 하나가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땐 제가 괜찮은 사람인 모양이다, 이정도로만 생각을 했죠.”

40일 특새로 신앙 더욱 다져져

세 번째 노크는 그가 존경하던 한 선배를 통해서 이뤄졌다. 어느 날 그 선배가 “이번 주에 내가 교회 주차 담당이라 차를 가지고 교회 오면 주차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으니 교회 한번 와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날 교회로 갔죠. 그런데 그 선배를 못 만났어요. 그래서 헤매고 있는데 다른 분이 어떻게 왔냐고 물어요. 그래서 사정을 말했더니, 그러면 들어가서 주차하시라고 해요, 그래서 들어가서 처음 예배를 드렸죠. 그때 하용조 목사님이 설교하셨는데, 그 말씀이 저한텐 ‘콜’이더라고요. 다 제게 하는 말씀이셨어요. 그날부터 쭉, 지금까지 온 겁니다.”

치매로 십 수 년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면서 신앙은 더욱 깊어졌다. 연말 40일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겠다고 주변에 선포를 했다. 첫날, 난생 처음 새벽 3시 50분에 찬 새벽공기를 가르고 나가는 기분이 당당했다.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교회 도착해 예배당에 들어간 그는 깜짝 놀랐다.

“벌써 꽉 차있더라고요. 이게 뭔가, 싶었죠.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40일 기도회를 통해 좋은 응답을 많이 받았어요. 어머니가 병환 중이셔서 어려운 점이 좀 있었는데 오히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자녀들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어요. 우리 형제들이 간병 초기엔 갈등의 여지가 있었는데 오히려 서로 격려해주게 되더라고요. 어머니의 병환이 오히려 우리 가정에겐 축복이 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지금은 특별새벽기도회가 다가오면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하나님께 기도제목을 올릴 때마다, 하나님은 거꾸로 이렇게 물으신다. ‘그럼 넌 뭐할래? 내가 그걸 들어주면 넌 뭘 할거냐?’ 특별새벽기도회 때마다 하나 둘씩, 내려놓았다. 술, 담배를 비롯한 세상적인 것들을 끊었다.

“어느 날은 겁이 나더라고요. 이번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뭘 또 내려놓으라고 하실지. 기브 앤 테이크는 아니지만, 저도 뭔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그래서 이번엔 이걸 내려놓겠습니다, 하고 선포를 합니다. 그런데 그게 훈련인 것 같아요. 그렇게 40일 특새를 통해서 영적으로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 아직 비신자들이 많고 그의 일터 역시 그런 환경이다 보니 아무래도 교회에 대한 비판을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경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날선 반응에 맞닥뜨려질 때마다 그는 더욱 아프다. 그러나 하고픈 말이 있다.

▲ 고향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시골 집 모습.

성경필사로 긴 영적 호흡 터득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다가 배신한다고 사랑이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교인들이 성경말씀만큼 살지 못한다고 해서 성경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요, 영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죠.”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교회의 공동체 활동이나 봉사, 전도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그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전도를 한다. 그건 그가 크리스천임을 항상 밝히고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려고 애쓰는 일이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미션이 뭘까, 생각해봤어요. 그건 제가 있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하고, 교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 그 은혜의 통로가 되려는 것이죠.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해요.”

요즘 그는 성경필사에 푹 빠져있다. 1년 전부터 아침에 출근하면 성경필사부터 시작한다. 성경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찍듯이 써 내려간다. 순간순간 마음을 붙잡는 구절들이 크게 다가온다. 그건 빨간 펜으로 쓴다.

“그전까지 한 7, 8년은 인터넷 설교를 듣는 것으로 큐티를 했는데요. 어느 날 그런 기도를 드렸어요. 영적으로 호흡이 아주 길어졌으면 좋겠다고요. 어떤 아주 도전적인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호흡을 잃지 않는 긴 호흡을 갖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요. 성경필사를 하면서 그걸 느껴요. 정자로 말씀을 따박따박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씨가 빨라지고 호흡도 급해지게 되죠. 그때 다시 쓰고, 또 다시 쓰면서 제 호흡을 가다듬어요. 일 년 째 하다 보니, 처음 시작할 때보다 제 호흡이 많이 길어졌다는 걸 느낍니다. 그게 은혜에요.”

성경필사를 다 마치면 이 노트를 큰 아들에게 주고 싶다. 작은 아들은 예수님을 영접해서 신앙생활을 잘하는데 큰 아들은 아직이다. 큰 아들도 함께 예배드리는 꿈을 꾸며 오늘도 진한 사랑을 담아 성경을 꾹꾹 눌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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