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面長)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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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면장(面長)을 하지”
  • 강석찬 목사
  • 승인 2016.05.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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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일제강점기 때, 면장(面長)은 지역의 말단 행정 기관장이었다. 그러나 월수입으로 보거나 지위로 보거나 그 면의 최고 책임자였기 때문에 선망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마을에서 말마디 꽤나 하거나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얻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했다. 하지만 무식한 사람이 앉으면 일만 저지를 뿐, 면의 행정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알아야 면장(面長)도 하지’라는 말이다. 이 말 속에는 무식한 면장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담겼다. ‘알아야 면장도 하지’에서 사용된 ‘면장’이라는 말은 우리말의 맛을 느끼게 하는 언어유희를 담은 셈인데, 논어 제17 면면장(免面牆)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공자가 아들 리(鯉, 字)가 백어(伯魚)에게 “너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詩經의 제1편)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는(面牆·면장)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 면장(面牆)은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다는 뜻이다. 곧 앞이 안 보이는, 즉 견식(見識)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무식함을 면하려면 면면장(免面牆)을 해야 한다. 면면장(免面墻)을 할 때 비로소 앞이 훤히 보인다. 면장(面墻)하면, 아는 것이 없음을 뜻하지만, 면장(免墻)하면 마주 대하는 담장을 벗어난 상태로 아는 것이 많아진다. 이 면면장(免面墻)이 면장(免牆)이 되고, 같은 음으로 면장(面長)이 되었다. 무식하면 면장도 못해먹는다는 말로 변해버린 것이다. 면장을 하더라도 알아야 한다. 특히 스승이요 선생이라 불리는 성직자들은 면장(免墻)해야 한다.
‘아는 것이 힘’(knowledge is power. 베이컨)이라 하지 않았던가!

잠언에서도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한다.’(24:5)고 했다.
예수께서 밤중에 자신을 찾아온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이고, 랍비인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요 3:10)고 했다. 아주 이상한 장면이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답지 않은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한 셈이다. “너는 이것도 모르냐? 선생이라는 자가 이런 정도도 몰랐냐? 이 정도도 모르면서 어떻게 랍비로 불릴 수 있느냐?” 무식하다고 한 셈인데, 니고데모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니고데모가 누군가? 이미 유대인 사회에서 인정받은 지도자이다. 예수께서도 인정한 ‘선생’이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무명이었을, 자신보다 젊은 예수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는데도 분노하거나, 예수님을 경원시하지 않았다. 그는 겸손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이 장면에서 니고데모의 성숙한 인격을 엿볼 수 있다. 후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장례를 주선하였다.(요 19:39)

요즘 성직자(聖職者)에 대한 사회나 교인들의 인식이 어떨까? 마음 속에서부터 성직자에게 순복하는 신도가 몇 %나 될까?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던진 질문을 새겨들어야 할 때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치열(熾烈)하게 살고 있는지 알고 배워야 한다. 목사들이 성직이라는 따사한 온실 속에 안주하는 한 ‘알아야 면장(面墻)하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승이라고 불리는 목사로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자꾸만 귀에서 맴도는 5월 마지막 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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