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으로서의 아버지’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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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으로서의 아버지’로 살았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6.05.18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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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고 싶은 목회자들

좋은 남편이라야 좋은 아버지도 될 수 있다

컨트롤 되지 않는 ‘과도한 소명의식’ 역효과

“나는 그동안 아버지로서의 갑질을 해왔었다. 아내와 자녀들은 을의 위치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야기를 듣지 않고 대들거나 거부하면,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화가 났다. 그러면 내 권위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더 세게 나갔다. 목사인 내가, 아버지이며 남편인 내가 이러고 살았다.”

목회자에게 ‘아버지’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과연 아버지이고 남편일까? 목회자인 아버지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인 ‘소명’. ‘가정’, ‘아내’, ‘자녀’라는 단어를 무력하게 만들어 뒷전으로 밀어버리기 일쑤다. 아내와 자녀들은 이미 멍들었고 찢겼다. 그렇다고 목회자들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내가 제대로 된 아버지일까. 그리고 남편일까?’

# 가르침 보다 ‘듣는 자세’ 필요

“아이들과 대화하고 싶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목회자아버지학교에서 만난 목회자들은 여느 아버지와 똑같았다. 오히려 더 간절했다. 하지만 “당신은 자꾸 가르치려고 한다”는 아내의 말은 이런 바람을 단 번에 잘라버린다.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방치해야 하나?”라는 논리로 맞서보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닫혔다. 마음을 열어야 교육이, 소통이 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설교하고 가르치는 목사로서의 인식이 가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 목회자들이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목회와 가정의 비중을 적절히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정의 위험은 목회의 위험으로도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최용준 목사(청주 순복음비전교회). 형님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다. 어려서부터 ‘이거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나도 아이들에게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최 목사는 말한다. 이러다 보니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 가장 편해야 할 관계가 ‘불편’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고 만다.

이런 모습은 어느 목회자에서건 똑같이 비친다. 늦은 나이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장용도 목사(은혜교회 부목사). 장 목사는 자녀를 둔 목회자들이 자녀들과의 대화와 사귐에 서툴러하고 불편해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너무 강조되면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결국 상처만 남기고 만다고 말한다.

# 가정에서도 아버지보다는 목사

문제는 컨트롤 되지 않는 소명의식.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가정보다는 목회에 주안점을 둔다. 소명 때문이다. 가정과 아내, 자녀들보다 소명이 먼저다.” 최 목사의 이야기는 목회자들의 현실을 설명하고도 남는다. “이것 때문에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역할은 없고, 또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 목회자로서의 소명과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적절히 공유되고 컨트롤 돼야 하지만,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목회에 몰입한 나머지 자녀와의 관계는 물론 부부관계 또한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효과는 목회의 위기로 연결되기도 한다.

아버지학교 목회자팀장 김성철 목사는 이 문제를 푸는 열쇠를 에베소서 5장과 6장에서 찾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 행하고, 서로를 위해 헌신하라는 것.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를 위한 관계 회복의 길이 여기에 있다고 김 목사는 말한다.

관계 회복을 말하는 김 목사의 어조는 강하다.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하면 결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목회자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좋은 부부관계”라고 말한다.

# 대화하고 다가가려는 꾸준한 노력

최 목사는 며칠 전 22년 만에 큰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22년 만의 일이었고, 그것도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대화를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청년 양육교재 문제로 툭탁거리면서 시작됐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아이가 한 번 입을 여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변의 이야기들과 생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쏟아놓더라. 정말 감격이었다.”

등 떠밀려 시작한 대화이지만, 최 목사는 관계 회복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녀들과의 스킨십이 조금은 쑥스럽지만 아이들도 나와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런 아이들을 보고 ‘내 자세를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의 위치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말을 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과 자세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낀다. 이게 습관이 되고 지속된다면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이러면서 최 목사는 목회자에서 아버지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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