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두고 떠난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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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두고 떠난 일정
  • 정성학 목사
  • 승인 2016.05.1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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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학 목사의 섬 목회 이야기(9)

저는 어디를 다닐 때, 몸만 다녀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동안 양 손으로 나른 짐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나이도 들고(?), 회전근 파열 이후에는 팔도 아프고 해서 여러 번 망설이다, 메는 가방을 하나 샀습니다. 가방을 산 지 한 달이 되도록 마음만 먹었지 실제로 둘러메고는 바깥 나들이를 못했습니다. 평생 손에 드는 가방에 익숙한 탓도 있지만, 가방만 둘러메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복도 벗고, 목 끈도 풀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65년 저를 묶고 있던 고정 관념을 끊는 것이 목 끈 풀기보다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이번 주에는 양복 대신 비슷한 재킷을 입고, 또 이 일을 염두에 두고 전날 마트에 가서 셔츠를 하나 사 입었습니다. 어버이날 자축 기념으로 산 것입니다. 가방을 둘러 메고 다니니, 택시를 타고 내릴 때 내려놓아야 한다는 불편함 빼고는 참 좋았습니다. 우선 양 손에 아무 것도 없다는 허전함이 계속해서 저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다가 등 뒤에 묵직한 보따리가 내리누르고 있음을 알고는 안심하곤 합니다. ‘진작에 메는 가방을 사서 메고 다닐 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의 급진전이 일어나는지 또 다른 패션이 추가되었습니다.

서울역 지하 매장에 터치펜을 사러 갔다가 터치펜은 못 사고 한지로 만든 카드 목걸이를 하나 샀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 등을 타고 내릴 때마다 전화기 포켓에서 카드를 꺼냈다가 집어 넣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습니다. 고개만 살짝 숙이고 센서에 대면 ‘삑!’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올라가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발권 때나 검색대 앞에서 일일이 신분증을 꺼내던 일도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제는 가방을 둘러메고 목걸이에 주민등록증을 끼우고 길 물어가며 걷는 영락없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틀 후 오늘은 아침에 출발하는 첫 비행기도 예약을 했으니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이 항공사 데스크로 갔습니다. 그런데 발권을 하려고 보니 아뿔싸, 제 신분증을 두고 나온 것입니다. 일주일 전에 서울역에서 카드 목걸이를 사서 걸고는 그 편리성에 감탄하다가, 정작 오늘은 걸고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아직 몸에 배지 않은 때문에 그런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렇게 다 챙기고는 정작 자기는 두고 나온 바보 같은 저를 바라봅니다. 당장 비행기 티켓은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받았지만, 검색대를 통과할 때는 명함을 보여 주고 스탬프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면세점에서 ‘스승의 날’ 선물을 사려니 거기서도 신분증을 요구했고, 면세점 밖의 직원에게 가서 신분 확인을 또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저는 없고, 마치 빈껍데기만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목걸이 하나도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익숙지 않아 이런 불편을 겪습니다. 어쩐지 토요일에 목걸이를 하고 다니다가 집에 와서는 ‘이러다 월요일에 이거 두고 가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 목걸이와 지갑에 주민등록등과 면허증을 나누어 넣고, 신용카드 한 장씩 넣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미루지 말고 바로 넣어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정성학 목사 / 제주 기적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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