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을 판단하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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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을 판단하는 기준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6.04.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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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사도신경

초대교회의 가장 집약된 신앙고백은 역시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지은 신경이란 뜻이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사실상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떠난 후에 정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사도신경은 사도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란 전설이 오랫동안 내려왔고 지금도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 기독교의 교리를 마련하기 위해 성령의 영감으로 베드로가 처음 한 구절을 기록하자 차례차례로 한 구절씩 더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합니다. 암브로스(Ambrose)와 루피누스(Rufinus)에 의하여 사도신경이 사도들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처음 주장되었지만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사도신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체계화 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의 유래는 200년경부터 세례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느냐?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곧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그 분을 믿느냐?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다시 사는 것을 믿느냐?” 그리고 세례를 받을 때에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받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에 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로마신경의 초기 형식이 히폴리투스 신경(215년)입니다.

여기에는 성부, 성자, 성령, 공회,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 등의 신앙고백을 따라 문답의 틀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도신경의 순서와 상당히 맥을 같이 합니다. 이런 신앙고백의 형태가 3세기 초엽에 일반적으로 교회의 신앙고백과 세례문답으로 널리 통용되다가 4세기 중엽에 문답식의 형식을 떠나 오늘날과 같은 사도신경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사도신경과 매우 근접한 가장 대표적인 것이 340년에 마르셀루스(Marcellus)가 제35대 교황 줄리우스 1세에게 보낸 신경입니다. 이 신조가 이전의 신조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마지막에 죄의 용서와 영생이 추가되었고 좀 더 함축적으로 다듬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사도신경은 약 5세기경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710년과 724년 사이에 드디어 로마교회에 의해 처음으로 채택되어 서방교회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750년경에는 로마 가톨릭에 의해 “음부에 내려가사”가 정식으로 삽입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피누스에 따르면 “음부에 내려가사”라는 표현은 “장사 지낸 바 되었다”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사도신경은 무엇보다도 잘못된 신앙과 정통신앙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경이나 감독의 권위만으로 유사 기독교와 정통의 차이를 평신도들에게 알게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공동으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그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당시에 가장 강력한 이단인 영지주의와 마르시온주의에 대항해서 하나님에 대한 표현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가 첨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와서 고통을 당해 십자가에서 죽었고 육체로 부활해서 영원히 산다는 고백은 그들 이단과 기독교를 완전히 구분시켜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사도신경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단의 발흥에 대한 교회의 응전으로 생성된 신조는 이단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정착되었습니다.

황의봉 목사(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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