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처럼 부려 먹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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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아들처럼 부려 먹으세요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6.03.2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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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한계곡교회 김선주 목사 ‘목사 사용 설명서’ 화제

농어촌 교회 목회자라면 이제 이런 목사 사용 설명서 정도 하나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 시골 교회 목회자가 만든 ‘목사 사용 설명서’가 지난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아들 같은 목사가 벌인 이 일은, 마음을 훈훈하게, 또 한편으로는 찡하게도 한다.

충북 영동에서 물한계곡교회를 담임하는 김선주 목사. 김 목사는 교회에 출석하는 어르신과 동네 어르신들에게 ‘이럴 때 목사를 불러달라’면서 그 내용을 조목조목 안내했다. 모두 10개 항목. 온라인에서는 ‘목사 사용 설명서’, ‘목사 사용 꿀팁’, ‘목사 십계명’ 등으로 불리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00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6백여 명이 공유했다.

김 목사는 지난 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화기 옆에 붙여놓으라고 하면서 ‘목사 사용 설명서’를 나누어주었다”면서 이 일을 공개했다. “몇 명 안 되는, 노인들이 전부인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 내 진심을 가로막는 일들을 경험하게 됐는데, 그것은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지나친 분리의식이었다. 이것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았다”면서 목사 사용 설명서를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른바 ‘목사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 ‘우리 목사님을 왜 힘들게 하느냐’는 인식들이다. 목사는 기도만 하고 말씀만 연구하며 교인들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서 분리된 영역에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들 말이다.

“(어르신들이) 이 문구들을 한 번씩이라도 읽을 때마다 목사가 당신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의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서, 목사와 성도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어했다.

목사를 불러야 하는 10개 항목들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시골에서는 꼭 필요한 일. 어느 정도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힘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보일러가 고장 나고, 텔레비전이 안 나오고, 냉장고와 전기가 고장 나거나 농번기에 일손을 구하지 못할 때, 그리고 몸이 아프거나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등이다. 한마디로 목사를 아들처럼 부려 먹으라는 간절한 부탁이다.

하지만 김 목사는 특히 10번 항목,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의 경우, 어르신들이 더 전화를 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항목을 넣은 이유가 있단다. 어르신들은 주로 경로당에 모여 화투를 치는데, 10원 내기 민화투라는 것. 하루 종일 화투를 쳐도 판돈이 2, 3백 원을 넘지 못할 뿐 아니라, 돈을 딴 사람은 그 돈을 반찬값으로 경로당 공금에 기부하는 것을 관례로 한다고 한다.

이런 화투를 치는데도 김 목사가 예고 없이 경로당을 방문하면, “화투를 치던 교인들이 간음하다 들킨 여인처럼 화들짝 놀라며 홍당무가 되어 안절부절 못한다”면서, “화투는 나쁜 게 아니라 목사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며,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동계 스포츠”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이 교인들의 사소한 기쁨까지 빼앗고 건전한 욕망의 지향점까지 통제하는, 옹졸한 규범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 목사는 말한다. “(어르신들이) 당신들의 삶의 현장으로 나를 깊이 초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목사는 불상처럼 모셔두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써먹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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