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청함’이냐, ‘체면을 잃지 않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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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함’이냐, ‘체면을 잃지 않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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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0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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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종 목사·백석대학교 총장

누가복음 11장에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세 가지 가르침이 나타난다. 첫째,‘주기도문’(2-4), 둘째, ‘밤중에 찾아 온 친구비유’(5-8), 그리고 셋째가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삼중적 기도 교훈’(9-13)이다. 이들 세 교훈 중 ‘밤중에 찾아 온 친구 비유’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이 비유가 기도할 때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는 우리의 기도자세에 관하여 교훈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관하여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성품에 관하여 교훈하고 있는가에 있다. 논란을 결정할 수 있는 열쇠는 핵심적인 단어로 등장하고 있는 헬라어 ‘아나이데이아’(anaideia)(8절)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있다. 우리말 성경은 전통적인 영어성경을 따라 이 말을 우리의 끈질긴 기도자세를 강조하는 ‘강청함’(persistence)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적지 않은 학자들이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체면을 잃지 않음’(shamelessness)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단어의 번역에 따라 비유의 메시지가 달라지는데 어떤 번역이 옳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첫째, 예수님의 비유를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헬라 유대문화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비유가 문장 구조적으로 빵을 요청하는 자의 자세보다 빵을 요청받고 받고 있는 자의 성품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비유를 문맥적으로 볼 때 전 문맥인 주기도문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고, 후 문맥인 기도의 삼중적인 자세에 대한 교훈도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점을 고려한다면 ‘밤중에 찾아 온 친구 비유’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 곧 기도하는 우리의 끈질긴 자세에 대한 비유로 보는 해석은 바뀌어져야 한다. ‘밤중에 찾아 온 친구 비유’에서는 우리의 기도자세보다도 우리의 기도에 관하여 반드시 응답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도, 응답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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