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柳寬順)의 나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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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柳寬順)의 나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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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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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종 목사 / 백석대학교 총장

3월 1일은 제 97주년 3.1절 기념일이다. 97주년 3.1절 기념일을 맞아 ‘3.1절 운동의 꽃’으로 알려진 유관순의 나라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 병천면 용두리 338번지에서 유중권과 이소제의 3남 2녀 중 차녀로 출생했다. 유관순은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인 이화학당에 재학 중일 때 일어난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의 독립만세운동과 3월 5일의 서울역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귀향하여 1919년 4월 1일 천안 병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헌병이 시위현장에 출동하여 군중을 향해 총을 겨누었을 때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군기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고 항의하였다. 유관순은 병천 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경성법원으로부터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서대문 형무소에서 그렇게도 목메어 외치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 19세에 순국하였다.

유관순의 나라사랑은 기독교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유관순은 조부 때 기독교를 받아들인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했다. 숙부가 선교사로 일하는 지령리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이 자랐고, 지령리 교회에 자주 들렀던 샤프 선교사 부인을 통해 기독교서적은 물론 당시 발간된 프랑스의 애국소녀 잔다르크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을 수 있었다. 1916년 이화학당에 입학한 후에는 매일 오전에 있었던 학교채플과 성경공부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밤중과 새벽에 기도실에 들어가 나라를 위해 기도를 했다. 이러한 기독교신앙이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10대 학생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나라사랑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기독교 신앙과 나라사랑은 초기 기독교 운동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창시자인 예수는 가난하고 병든 동족들을 우선적으로 찾아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라가 로마군대에 멸망당할 것을 내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97주년 3.1절을 맞아 한국 기독교가, 특별히 이 땅의 젊은이들이 기독교 신앙과 나라사랑의 불가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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