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어디로 가오리까?” 선배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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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어디로 가오리까?” 선배에게 길을 묻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6.02.05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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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NTV 대표이사 유재건 장로, 청년과의 대화
▲ 유재건 장로와 김수연 청년은 한 시간 넘도록 깊은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마치 할아버지와 손녀딸 같다.

CGNTV 대표이사 유재건 장로 / 취준생 김수연 씨

일시:2015년 1월 27일

장소:CGNTV 대표이사실


올해로 여든살인 CGNTV 대표이사 유재건 장로(온누리교회). 제15·16·17대 국회의원과 변호사, 대학 교수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유 장로를 보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52년 전인 1964년. 28살 청년 유재건에게도 요즘 청년들 못지않은 고민거리가 있었다.

지난달 27일 유 장로가 시무하는 CGNTV 대표이사실에서는 유장로의 28살 시절을 회상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이해하고 이들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유 장로와 올해 28살로 취업준비에 한참인 청년 김수연 씨의 특별한 만남이 성사된 것.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면서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는 김수연 씨는 유 장로에게 28살이던 시절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는지 비결을 물었다. 52살이라는 나이차이가 무색할 만큼 두 사람의 대화에는 이해와 공감, 위로가 넘쳤다.

 

김수연 청년(이하 김):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28살 청년들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장로님의 28살은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유재건 장로(이하 유): 요즘 청년들과 직접 깊은 대화를 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 잘 모르지만, 제가 28살 때 했던 걱정과 지금 청년들의 걱정이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당시 제게 있어 가장 큰 화두는 취직과 결혼이었습니다.

28살에 저는 1년 내내 취직시험 보러 다니고 직장 구하러 다니느라, 데이트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외아들로 할머니와 어머니, 두 과부댁을 모시고 사는 가장이었습니다. 가족경제를 책임져야 했기에 초조하고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동아일보 시험에 합격하고 청와대 비서관 시험에 합격했지만. 6.25때 아버지가 납북된 것과 관련해서 신원조회 과정에서 합격이 취소됐습니다. 아버지가 강제로 잡혀간 것인지 자진으로 납북한 것인지 확인이 안 된다는 겁니다.

동아일보에서도 그해 15명을 새로 뽑는데, 면접을 본 16명 가운데 저만 떨어졌습니다. 역시 저의 신원 때문이었습니다. 청와대에서 거절당한 배경이 있는 사람을 뽑으면 부담이 되니까 탈락시킨 거죠.

연말까지 여기저기 원서를 넣다가 동아일보에서 저를 떨어트렸던 논설위원이 미안한지 직장을 소개시켜줬고, 그곳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였습니다.

가보니 청와대나 동아일보보다 제게 좋은 곳이었습니다.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과, 국제교류업무를 한다는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그때서야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결혼을 하려니 제 집안 배경이 점잖은 집에서 딸을 줄 입장이 아니었던 거죠. 그렇게 어영부영 2년이 지나 30살이 됐습니다.

돌아보면 그때도 금수저니 은수저니 이런 말이 있었어요. 제대로 좋은 집안이 아니면 장가가기 힘들고 직장도 알음알음 알지 못하면 좋은 곳에 취직하기 힘들었습니다.

 

김: 당시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됐을 시절이었을 텐데, 지금 저를 보면 장로님 젊었을 때보다 훨씬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불안한 때가 있습니다. 장로님의 당시 꿈과 비전이 무었이엇는지,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도 실패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유: 저 역시 불안했습니다. 아마 믿음이 없었다면 더 불안했을 겁니다. 제 꿈은 교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미아동 감리교회라고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목사님께서 저를 보며 “유 군 걱정마라 너는 하나님이 지켜준다는 환상을 본다”면서 제게 힘을 주셨고 저는 그 목사님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는 성경의 여호수와 말씀을 매일 외우면서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고 했으니 열심히 기도하고 순종하고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한 서울대생이 자살하면서 유서에 쓴 “나같은 흙수저는 앞으로도 희망 없다”는 말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도 흙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이죠.

아무리 흙수저라도 그 흙을, 토양을 잘 가꾸고 그 위에 좋은 나무를 키워서, 그 나무 밑에 곤하고 지친 사람들 쉬게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 나가야 할 길인줄 압니다.

만약 수저조차 물지 않고 흙만 가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잘만 가꾸면 우리가 공헌할 것이 많습니다. 원망만 하고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방황하는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젊고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노력을 중단하는 것은 청춘을 망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믿음이 제대로만 들어가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들을 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김: 지금까지 변호사, 국회의원, 교수 등 인생의 다양한 이력이 있으신데, 다양한 도전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하나에만 머물렀어도 충분히 보장된 삶일 텐데,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유: 내가 뭘 하겠다 해서 된 것이 없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80년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곳 CGNTV도 제가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변호사 할 때도 속칭 잘나가고 돈도 잘 벌었는데, 엉뚱하게 MBC 백분토론 사회자로 추천 받아서 한국으로 온 것이 국회를 지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국회 가서 12년, 3선을 하고 사형제도 폐지 법안도 내고 부정부패방지법안도 내게 됐습니다.

모두 다 제가 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하나님 인도하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신문을 돌리고, 찹쌀떡이나 팔던 소년을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 “찹살떡”하고 우렁차게 외친 것이 발성연습이 되어, 3천명 앞에서 우렁차게 연설할 수 있게 됐고, 신문을 돌리면서 다리가 튼튼해져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가 제 인생에서 가장 춥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돌아보니 하나님의 훈련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김: 사실 주변을 보면 힘든 마음에 대한 불만을 기성세대로 돌리는 친구들도 적지 않습니다. 기성세대의 한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유: 동의합니다. 정부가 청년 문제에 대해 대책을 말로만 떠들지 구체적인 대책이 없습니다. 등록금, 영유아 보육 등 정부 당직자들이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젊은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줘야 합니다. 정책적으로 젊은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죠.

청년들은 쉽게 포기하지 말고 ‘3포’‧‘5포’를 거둬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미래와 희망이 보이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껏 한 번도 좌절하거나 우울증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다 살아서 이런 말을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홀어머니와 할머니를 모시고 혼자 살던 저를, 혹자는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손잡아 주시고 인도해주신 겁니다.

자녀들 세대, 젊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도에서 좌절하면 이것은 개인적인 손해를 넘어 인류의 손해라는 것입니다. 청년들을 위해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젊은 사람들이 정치권에 많이 참여해야한다고 봅니다. 젊은 사람들이 정치는 모리배같이 나쁜 사람들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말고 정치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발해야 합니다.

전부가 정치인이 될 수는 없지만 상당수 젊은이들이 우리 삶에 정치가 직결된다고 생각하고 정책입안에 여론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기성세대에게만 맡기지 마세요.

고 김영삼 대통령은 25살에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지금은 젊은 사람이 너무 없어요. 정치 혐오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김: 마지막으로 이 시대 시니어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유: 소위 할아버지 세대는 아이들을 똑바로 리드해야 하는데 이제는 그게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젊은이들을 봐도 바른 소리를 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러다 매 맞은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나이든 사람이 바른 말 할 수 없는 사회에요. 저만해도 눈에 거슬려도 “내 자식이나 잘 간수해야지” 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바른 모범을 보이고, 사회를 다독여 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야겠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시니어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정리-손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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