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 전도(主客顚倒)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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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 전도(主客顚倒)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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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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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태 /인터서브 코리아 교회 관계팀

안식일에 대한 논쟁

하루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걷고 계셨다. 시장한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제기한다.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다윗을 예를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행위와 목적성의 관계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이 있다.  어떤 행동을 하는 주체가 오히려 그 행동에 묶여서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버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 행동을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목적 의식이 희미해 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볼 때에도 처음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목적성에 민감하지만 모태신앙이나 교회를 오래 다닌 신자들은 목적성이 희미해 질 수 있다. 심지어는 목회자들도 그렇게 되기 쉽다. 바리새인들처럼 교회 사역들이 중요한 것은 알고 행동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 즉 목적성에 해당하는 존재론은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목적성이나 존재론이 희박해지면 그 이후에는 교회를 원래 세우신 주인되신 주님의 뜻이 이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교회의 존재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사람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주님의 축복의 통로이며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명제가 성립되기 위해 현실적으로 교회들에게 가장 요청되는 내용은 과연 교회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것이다. 혹시 교회가 현재 교회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모임이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해 보아야 한다. 만약 교회가 주님의 말씀대로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막 )이라고 한다면 지역 교회는 마땅히 지역 사회를 품어야 하고 모든 민족을 품는 글로벌(global)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 둘을 합친다면 사도행전 1장 8절처럼 글로컬(glocal)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교회는 일하는가?

이천 년 전, 하나님의 명령인 안식일을 열심으로 지키려던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의 진정한 목적은 상실하고 그 행위 자체가 주(主)가 되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교훈을 오늘날의 교회들이 받아야 한다. 우리는 과연 교회의 사역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았는지? 그래서 안식일에 안식을 누리지 못했던 유대인들처럼, 우리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을 쉬게 하시려는 교회 공동체의 목적(마 11:28)이 와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교회 사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교회 사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우리의 범위를 확장하여 지역 사회와 멀리는 미전도 종족들에게 까지 섬김의 범위가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주님께서 진정으로 교회의 주인이 되시지 않을까? 교회, 주객전도(主客顚倒)를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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