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목이 '대지'면 종교시설 아니다?... 재개발 횡포 이대로 좋은가

은평구 녹번동 삼일교회 재개발 과정에서 '종교부지' 의도적 배제 논란 이현주 기자l승인2016.01.05l수정2016.01.05 20:33l13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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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조합과 시행사가 40년 간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교회를 강제 철거하는 일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녹번 제1-2지구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설립한 지 40년 된 삼일교회가 등기부상 ‘대지’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악용해 교회의 존치 요구를 묵살하고 조합정관에 따라 현금청산 대상자로 분류했다. 등기부에 ‘대지’로 설정된 교회는 법률상 종교시설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한 것.

조합과 시행사의 억지 속에서 목회자와 성도는 거리로 쫓겨나 벌써 두 달째 노상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교회가 소속된 서울노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본부가 나서면서 ‘대토’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총회는 당초 ‘종교부지’를 받아 존치되었어야할 교회가 개발 이익과 조합의 궤변에 밀려 성소를 침탈당하고 거리로 쫓겨난 것 자체를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하면서 강력 대응을 천명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한 교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개발업자들이 종교 고유 목적활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지자체가 이를 묵인하면서 교회가 개발과정에서 지역사회 밖으로 밀려날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삼일교회가 조합으로부터 ‘대토’를 받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시설로서 종교부지’ 지정을 받지 못할 경우, 등기부상 ‘대지’로 설정된 서울 시내 수많은 교회들이 유사한 피해를 볼 수 있어 한국교회가 이 사건의 해결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일 주일 오전 30여명의 성도들은 교회 앞 인도에서 예배를 드렸다. 지난 11월 18일 조합과 시행사인 삼성물산이 집행관을 앞세워 교회 성물과 성구를 강제로 드러내고, 내부 시설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교회 강제철거는 예고 없이 진행됐다. 교회가 비어있는 틈을 타 용역업체를 동원해 철거를 진행한 것. 이 과정에서 40년 목회자료와 교회 역사가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삼일교회 하태영 목사는 “조합과 협상을 진행하는 중에 강제집행은 없다고 약속을 해놓고 이런 야만적인 일을 벌였다. 교회의 강제 철거는 명백한 성소침탈”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삼일교회는 어쩌다 강제철거로 쫓겨나는 위기에 처하게 됐을까?

통상 지역 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이 시행될 때 교회나 성당 등 종교시설은 존치와 이전, 보상 등에 대해 우선 협상을 하게 된다. 아현동 뉴타운의 경우 지역 내 교회들이 ‘존치’를 합의해 조합에서 종교부지를 우선 배정했다. 개발 기간 중에는 교회 이전 비용을 지급하는 등 종교 목적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유독 녹번동 재개발 과정에서만 교회가 쫓겨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시작은 등기부등본에서 비롯됐다. 녹번 제1-2지구 재개발 지역은 삼성물산이 시행사로 참여하면서 1300세대가 들어오는 대단지가 조성된다. 그런데 이 지역에 종교시설은 삼일교회 단 한 곳뿐이었다. 삼일교회는 재개발 구역 지정과정에서부터 ‘존치’를 신청했다. 그러나 조합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회가 등기부상 ‘대지’로 설정되었다는 지목 구분의 특성을 교묘하게 악용한 것이다.

교회의 존치 요청에 대해 조합은 “당 조합은 구역지정 당시 종교부지가 계획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삼일교회의 대지 및 건축물은 법률상 종교부지나 종교시설로서 등재되어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또 조합은 “재개발의 경우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아도 조합설립 인가를 득하면 구역 내 토지, 건물, 또는 소유자는 조합원에 해당하므로, 분양신청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분양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현금청산자로 분류된다는 것.

꾸준히 존치를 요구한 삼일교회는 지목상 ‘대지’로 되어 있어 종교시설로 볼 수 없다는 조합의 법적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서울시내 유서 깊은 교회들은 모두 ‘대지’로 지목이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종교시설과 종교부지 판단은 지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 목적활동’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교회를 압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은 지난 10월까지도 “법률상 종교부지나 종교시설로 등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계속적인 종교 활동은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한마디로 일개 조합이 종교 활동까지 제재하고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재개발 지역들은 ‘지목’으로 종교시설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마포구청 재개발 담당 공무원은 “조합이 결성되고 그 지역 내 종교시설들이 존치를 요청하면 종교용지를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협상을 진행하게 되어 있다. 교회를 이전할 경우 목회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종교부지로 지역 내 존치시키는 것이 관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종교시설 판단은 고유 목적활동으로 하는 것이지, 지목으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에서 수십년 한 곳에서 목회한 교회들은 지목이 ‘대지’로 설정되어 있다. 교회들은 굳이 지목을 ‘종교용지’로 변경하지 않아도 종교법인 등록과 고유 목적활동으로 종교시설 인정을 받았다. 심지어 서울시 종교시설 처리방안에는 ‘종교시설은 우선적으로 존치가 되도록 검토’하도록 되어 있으며, ‘존치 대상은 종교단체가 토지 및 건물을 소유하고 정상적인 종교활동을 수행 중인 곳을 기준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삼일교회 역시 지역 주민은 물론 은평구 주민들이 다 아는 도로변에서 40년 간 목회활동을 해온 종교시설이다. 종교 활동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지자체도 그동안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등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은 ‘지목 구분’만 강조하면서 교회를 재개발 지역 밖으로 내쫓으려 한 것이다.

이정숙 조합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애초에 삼일교회가 종교부지였다면 반드시 설계단계에서 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지로 되어 있으면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삼일교회의 종교 활동을 ‘지목’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현재 삼일교회는 대토를 비롯해 성소침탈에 대한 공개사과, 신속한 예배처소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교계는 “단순한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종교 고유 목적활동을 조합과 시행사가 판단한 것부터가 잘못이고, 이러한 사실을 묵인한 지자체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다시 종교부지를 포함하는 사업과 설계의 변경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삼일교회는 이달 말까지 조합과 협상을 계속할 예정이다. 조합은 대토와 건축비용 일부를 약속했지만 삼일교회와 서울노회 등은 법적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 종교시설 처리방안에 따르면 재개발 지역에서 존치에 준하는 이전 계획을 수립할 경우 △기본 부지와 이전 예정부지는 ‘대토’ 원칙 △현 종교시설 실제 건물 연면적에 상당하는 건축비용 조합 부담(성물 등 가치가 큰 종교물품에 대한 제작 설치비 고려) △사업기간 동안 종교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임시 장소 마련, 이전 비용 등 조합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삼일교회 하태영 목사는 “지목 등을 악용해 우리와 같이 피해를 입는 교회가 없길 바란다”며 “이 사태는 단순히 한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라며 주의를 요청했다.

이현주 기자  hjlee@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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