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 시리즈] 누가 교회의 이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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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 시리즈] 누가 교회의 이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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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3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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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태 선교사 / 인터서브 코리아 교회관계팀

영생과 이웃 사랑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던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영생과 아주 밀접한 계명인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자 율법사가 다시 질문한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이 율법사의 질문이 오늘날 교회들이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오늘날 교회의 이웃이 누구인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

마땅히 이 이야기에서는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었다. 앞서간 두 사람은 강도 만나서 죽어가게 된 사람에 대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무자비하게 보고 그냥 지나갔기 때문이다. 세 사람 이야기 중에서 오늘날의 교회들은 어디에 속하는가? 죄의 영향력 때문에 사탄에게 오용되어 영적 핍절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가?

 

제사장과 레위인 같은 교회들

그 사람을 보고 지나쳤던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은 종교적인 제례 정도에게 그쳤다. 정작 그들은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과 연결되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실천하지 못했다. 이들은 종교적이었지만 관계적으로 이웃들과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바로 그것이 문제이다. 우리 안에서는 무엇인가 대단히 하는 것 같지만 정작 강도 만난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웃으로 다가가는 데는 아주 인색하다. 교회 건물이나 교회의 프로그램에는 많이 투자하지만 정작 이웃 사회를 향하여는 아주 조금하거나 거의 관여하지 않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웃 교회

선교적 교회는 강도 만난 이웃들을 불쌍히 여겨 다가가는 성육신적 교회이다. 그리고 이웃을 성령의 기름과 주님의 피로 상처를 치료하는 교회이다. 그들을 필요를 위해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는 교회이다. 또한 이웃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교회이다. 오늘날 주님께서 오셔서 동네 사람들에게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되는 교회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떤 교회의 이름을 댈 수 있을까? 오히려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종교적으로는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그의 믿음에 합당한 행위는 전혀 하지 않는 위선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닌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믿음은 행위를 수반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교회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교회들이다(마 7:24-28).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그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교회들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제라도 강도 만난 이웃들에게 다가가는 태도로 바꾸어야 한다. 데릴 구더가 말하는 “교회의 지속적인 회심”은 바로 교회가 이웃한 지역의 주민들을 향하여 다가가는 교회들이다. 주님께서 교회들에게도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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