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잘 되면 되나요? 모두가 잘 돼야 좋은 세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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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잘 되면 되나요? 모두가 잘 돼야 좋은 세상이죠”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5.12.23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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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정리하는 거리 풍경

연말. 어디 특별한 곳을 찾아갈 수도, 특별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담아내기로 했다. 경기도 안양. 이른바 평촌이다. 두 곳의 백화점과 한 곳의 아웃렛 매장이 있는 범계역 인근. 가족들과 쇼핑을 위해 들렀던 곳이지만 오늘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골목골목 누벼보니 전혀 새로운 얼굴이다.

# 한 해를 정리하는 분주한 움직임들

‘세밑’이라는 단어, 사람들을 차분하게도 하지만 달뜨게도 한다. 흩날리는 낙엽들을 밟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가볍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 나라의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 전해지는 소식들은 온통 어두운 소식들뿐이지만 그래도 한 해를 정리하는 세밑만큼은 즐겁게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일까. 거리거리에 사람들이다.

지하철 4호선 범계역. 2번과 3번 출구로 한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나 여기저기로 흩어져간다. 등 뒤로 찬바람이 쌩 하고 몰아치지만 종종걸음 치는 얼굴은 밝다.

▲ 한 해를 마무리하는 움직임이 분주한 날 만난 어린아이들의 웃음은 밝았다. 언 마음은 녹이고, 무거운 마음의 짐은 벗자. 2016년은 아이들의 밝은 웃음이 지켜지는, 모두가 잘 되는 세상이기를 기도한다.

길가에 늘어선 포장마차마다 사람들이 들어찼다. 허옇게 피워 올리는 어묵연기는 추위를 몰아내고, 빨갛게 두터운 옷을 껴입은 떡볶이는 쉴새 없이 접시에 담긴다. 조잘거리는 여학생들의 한바탕 웃음이 길거리로 환하게 퍼져나간다. 꼬불꼬불 대나무 꼬챙이로 꿴 어묵꼬치도 달콤 짭조롬한 입맛을 당긴다.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어묵국물에 얼어있던 마음들이 모두 녹는다.

전철역 입구. 양말만 파는 비닐하우스 노점이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양말밖에 없다. 양말 전문점인가보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주인이다. 한 아주머니가 들어가 한 10여 분 머물더니 꽤 많이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나온다. “뭘 그렇게 많이 사셨냐?”고 물어보니, “우리 애들하고, 옆집 애들 것도 좀 샀다”고 말한다.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이다. 이렇게 연말 인심은 양말 하나까지도 더 사게 만든다.

# 사람들이 잘 돼야 장사도 잘 돼요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양쪽으로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정말 연말 분위기다. 상가들마다 고객들을 끌기 위한 풍선 아치며 입간판들을 길가에 세웠다. 여기저기 흥겨운 노래가 들려 나오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사람들 물결이다.

“위하여!” 소리가 길까지 흘러나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족발집. 10여 명 되어 보이는 친구들이 모여 있다. 한눈에도 송년회 모임이다. 연이어 위하여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 이제 막 시작된 듯 하다. 건배를 하는 술잔들 아래로 먹음직스런 족발이 상 위에 수북하다.

중년의 두 여인이 한눈에 알아보고 달음질을 한다. 그리고 손바닥 인사부터 한다. “어머어머, 얘. 일 년 만이다. 일 년 만이다”를 손바닥을 마주치며 연신 외친다. 그렇게 한참을 두 손을 잡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여인네들은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 꽃을 피우기로 한다. 들여다 본 커피숍에는 유난히 손님들이 많다.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없다. 역시 연말인가보다.

한쪽에서 20여 분 전부터 두 명 세 명 모이던 50대쯤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고깃집으로 들어간다. 기다리던 일행이 모두 온 것 같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성들이다. 서로의 안부만 살짝살짝 물을 뿐 별다른 이야기는 없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이다. 이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리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로 들어가 꼬치 하나를 빼어 물었다. 따끈한 국물도 한 컵 따라 놓았다. 겨울 하면 어묵인데, 장사는 잘 될까. “연말에다 토요일인 거에 비하면 손님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는 대답이다. 오히려 “요즘 같은 연말에는 이런 포장마차보다는 고깃집이나 음식점에 손님이 많이 몰린다”고 한다. 대부분 송년회 모임이니 당연한 현상이란다.

주인 아주머니. “연말인데 사람들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잘 돼야 우리 같은 포장마차 하는 사람들도 장사가 잘 돼요.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참 답답해요. 사람들이 다 자기만 잘 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나만 잘 된다고 잘 되는 게 아닌데, 다 잘 돼야 잘 되는 건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 거리 풍경은 다양하다. 연말을 함께하는 따듯함이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곳도 있다.

# 아이들의 웃음은 세상을 밝게 한다

한 백여 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상가거리 중앙에 있는 광장. “야~~~ 강아지다.” 정확히 말하면 강아지 장난감. 장난감을 파는 거리 좌판으로 순식간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모여든다. 몇몇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한다. 분홍색, 보라색 강아지 장난감이 아이들을 반긴다. 천진하게 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을 즐겁게 한다. 무심한 듯 스쳐가던 어른들도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곤 빙그레 웃음을 떠올린다.

근처 중앙공원에서 주말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것이 생각나 발걸음을 옮겼다. 가보니 아니 웬걸. 주말이면 차량을 통제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가 휑하다. 겨울에는 벼룩시장을 열지 않는단다. 하는 수 없다. 이번에는 길 건너 백화점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한 청년이 이 엄동설한에 지붕을 오픈한 카브리올레를 운전하며 호기롭게 지나간다.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고 싶은지, 아니면 여친에게 멋지게 보이고픈가 보다. 거리에 젊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평촌이 젊은 동네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길 건너편 백화점 쪽에는 아직 구세군 자선냄비가 나와 있다. 쉬지 않고 울리는 종소리 사이로 따뜻한 말 한마디 흘러나온다. “여러분이 가지 못하는 곳에 우리 구세군이 가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가지고 가겠습니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 하나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유난히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곳이 있어 봤더니 로또 판매점이다. ‘1등 당첨점’이라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세로로 내걸려 손님을 끈다. 이거야 말로 별 다른 광고가 필요 없을 듯 하다. 2등 당첨자도 나왔단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줄지어 내년, 미래를 위한 꿈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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