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크리스마스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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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크리스마스 ‘그때 그 시절’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5.12.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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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특집] 사진으로 보는 추억의 성탄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웃으며 기다리던 크리스마스”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해마다 이맘 때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장식물들이 거리를 화려하게 물들이고, 사람들도 각종 행사를 열어 성탄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크리스마스는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기쁜 날이었다. 전쟁 중에도 성탄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고, 통행금지가 있었던 서슬 퍼런 시절에도 이날만큼은 통금이 해제됐다.

그만큼 크리스마스는 누구에게나 즐거운 축제일이었고 연말과 더불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따뜻한 날이기도 했다. 그 시절 크리스마스의 풍경 속에서 지금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자.

 

▲ 전쟁 중에도 열린 ‘성탄 축하식’ 1954년 주한미군이 주최한 애육원 크리스마 행사에서 일자 단발머리에 고사리 손을 곱게 모으고 캐럴을 부르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래 사진은 전쟁 중에 열렸던 국회 크리스마스 축하식.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의 사람들이 국회에 모여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출처:국가기록원.

 

▲ 서울시청 앞 성탄트리 서울시청 앞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면 ‘이제 곧 성탄절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시청 앞 트리는 성탄절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졌다. 시청 앞 대형 트리 점등 식은 1965년부터 이어져 왔다. 위 사진은 1965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점화식 모습이다. 아래는 1970년대 시청 앞 성탄트리의 모습. 출처:국가기록원.
 
▲ ‘통금’도 성탄절 만큼은 해제 1945년 도입된 야간통행금지는 1982년까지 계속됐 다. 야간통행금지 제도는 사상 통제, 국가안보 수호, 정치적 저항세력 억압을 위해 국민들의 시·공간을 제한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야간통행금지제도 시행 아래 일반 시민들은 일상의 자 유를 박탈당했다. 하지만 성탄절만큼은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자유의 날이었다. 이런 세태를 반하기라도 하듯 1981년 12월 25일 한 일간지는 ‘고요했던 성탄전야, 통금 없어도 별 탈 없 다’는 제목으로 1면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사진은 1965년의 크리스마스 거리풍경. 출처:국가기록원
▲ 그때나 지금이나 크리스마스는 ‘대목’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성 탄절을 맞아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벌이는 상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탄절은 상인들에게 대목이었다. 사진은 1975년 명동 미도파 백화점의 성탄절 풍경. 출처:국가기록원.
 
▲ 추억의 새벽송 지금도 몇몇 교회에서는 성탄절 새벽 교인들의 집을 방문해 찬양을 부르는 새벽송을 하지만 이제 전에 비해 찾아보기 힘든 풍경으로 남아있다. 사진은 1950년 대 새문안교회 성가대의 크리스마스 새벽송 모습. 출처:사진으로본새문안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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