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 시리즈>메시지인가? 마사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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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 시리즈>메시지인가? 마사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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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1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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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태 선교사 / 인터서브 코리아 교회관계팀

메시지로서의 설교

선교적 교회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예배는 선교적으로 드려져야 하며 설교도 또한 선교적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메지지는 전달자가 수신자에게 보내는 정보 혹은 아이디어를 말한다 (http://www.merriam-webster.com/). 그럼으로 메시지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주체(the sender)이며 그 다음이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이다. 세 번째 요소가 수신자(the receiver)이다. 설교에 있어서 설교자는 바로 메신저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메신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배에 있어서 메시지는 분명 예배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청중들에게 전하는 행위가 바로 설교이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또한 그 메시지도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구약의 예를 보더라도 메신저였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하는 일은 매우 부담스런 일이었다. 에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예언하지 않겠다는 고백까지 했던 적이 있다(렘 20:9).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분명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답게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사지로서의 설교

이사야서나 에레미야서를 보면 두 종류의 선지자가 등장한다. 바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이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었지만 거짓 선지자는 보내심을 받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선지자라고 자칭했던 사람들이었다(렘 14:14,15).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대부분 축복에 대한 것이었으며 안전에 대한 것이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을 때 하나냐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꺽어 버리고 오히려 고난이 임하지 않을 것을 말했다(렘 28:12-17).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된 예언은 왕과 관원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위로는 참된 위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잠시 동안의 위로였다. 그 거짓된 예언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 기회, 하나님께로 돌아갈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동일한 우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많은 경우의 설교를 들어 보면 성도들을 격려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인 것을 발견한다. 물론 설교에는 격려의 의미가 분명 들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딤후 3:16). 설교를 통해서 매 번 책망 만 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설교가 매 번 위로와 격려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어도 문제가 아니겠는가? 마사지가 잠깐 동안은 효험이 있어도 근본적인 치료를 해 주지 못하는 것처럼 위로와 격려 중심의 메시지가 참으로 하나님의 모든 메시지를 전하는데 충분한가?

 

메시지가 메시지 되기 위하여

교회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산물이다. 또한 교회는 현재도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공동체이다. 계시록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곱 교회를 향하여 성령께서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성령께서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내주 하시고 교회 가운데 말씀하신다고 믿는다면 메신저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 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어떤 때에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떤 때에는 책망의 메시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때에는 도전의 메시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메시지는 청중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잘 전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메시지 전달 방법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마음의 핵심은 ‘잃어 버린 양을 찾는 것’이다 (눅 15:7,10,32).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일이다(시 67편; 롬 11:25; 딤전 2:4; 계 5:9). 성경은 이것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메시지가 마사지 수준에서 끝나지 않기 위해서 메신저들은 이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보내심을 받은 교회로서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설교 가운데에서도 보내심을 받은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나게 하는 메시지가 선포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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