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에서 나누는 희망…“꽁꽁 언 두 손을 잡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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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거리에서 나누는 희망…“꽁꽁 언 두 손을 잡아요”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5.12.16 0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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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거리상담 동행 취재기

내친 김에 거리 노숙인 상담에 동행해 보기로 했다. 지난달 ‘인천 내일을 여는 집’을 취재하다 듣게 된 ‘노숙인 쉼터’의 거리상담 사역. 노숙인들의 겨울이 궁금했다. 사역자들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싶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지난 9일 노숙인 쉼터 생활지도사 황규빈 목사와 신선호 전담 상담원, 희망고용지원센터 조은지 상담사를 만났다. 쉼터에서 3개월째 머물며 자활을 준비 중인 김현철 씨(가명)와 얼마 전 입소한 김경기 씨(가명)가 ‘노숙인이 노숙인을 돕는 캠페인’, 일명 ‘노노사업’ 일환으로 함께했다.

거리상담은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 진행된다. 보통 저녁 8시에 나와 부평역과 인천 고속버스터미널, 주안역을 순회하면 꼬박 11시가 돼야 끝나는 쉽지 않은 일정이다.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음식과 물품을 싣고, 기자를 포함해 6명이 탑승하자 승합차가 가득 찬다. 노숙인 활동과 관련해 거리 취재가 처음은 아니지만, 봉사자로 다가간다는 점 때문인지 설렘과 긴장이 겹쳐졌다. 술에 취한 노숙인들로 인한 돌발 상황들을 여러 차례 경험해서인지 긴장감은 다른 때보다 더 컸다.

▲ 부평역 광장에서 노숙인 쉼터 거리상담사를 만난 사람들. 매주 월 수 금, 밤 8시 한결 같은 시간에 도착하기 때문에 노숙인들은 시간에 맞춰 상담가들을 기다린다. 상담가들을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상담으로 이끌어낸 안 씨의 쉼터 입소

차량이 부평역 앞마당에 멈추자, 기다리고 있던 노숙인들이 속속 모여든다. 거리상담 시각을 알기 때문에 늘 이렇게 먼저 나와 상담원들을 기다린다고 한다.

차 문이 열리자 처음 온 기자를 제외하고는 5명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황규빈 목사와 쉼터 식구 2명이 줄을 선 노숙인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나눠주고, 조은지 직업상담원은 이름을 적으면서 근황을 묻는다.

24살 청년 신선호 상담원의 활동하는 모습이 재밌다. 대학 졸업 후 1년 전 ‘내일을 여는 집’에 입사해 줄곧 거리노숙 상담을 전담하고 있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슬슬 피해갈 법한 노숙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간다. 노숙인들도 스스럼없다.

수레 가득 박스를 실은 낡고 낡은 옷차림의 머리가 하얀 할머니 노숙인. 오랫동안 거리생활에 젖은 듯 보이는 할머니 역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 청년과 대화를 이어간다.

그 곁 벤치에는 외투를 걸치지 않은 한 남자가 앉아 있는 게 눈에 띈다.

어색한 듯 나눠주는 음식을 받아든 안상현 씨(가명). 그에게 조은지 상담사가 서둘러 준비해둔 점퍼 하나를 차에서 꺼내 다가간다. 일주일 전에 점퍼를 구해주겠다고 했다가 이번에야 만난 것이다. 인근 공원에서 잔다는 이 노숙인은 일주일째 추운 겨울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많이 추웠겠습니다. 들고만 있지 마시고 얼른 입어보세요.” 기자의 말에 안 씨가 서둘러 옷을 입는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해 대강의 사정을 들어봤다.

올해 56세인 그는 노숙생활을 3년 정도 했다고 한다.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깔끔한 차림에 태도는 점잖다. 조심스럽게 거리에 나오게 된 배경을 물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렇게 됐다고 설명할 뿐 말은 아꼈다.

그는 4~5개월 전까지도 노동일을 하면서 수입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허리통증 때문에 자신을 써주지 않는다고 조용히 읊조린다. 혹시 노숙인 쉼터에 들어가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쉼터에는 안 가요. 예전에 서울역 근처에 있는 쉼터에 한번 갔다고 술 취한 사람하고 싸우고는 다시는 안 갑니다.” 과거 경험을 떠올리는 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하지만 부평역 인근에 하룻밤 머물 ‘응급잠자리’가 있다는 이야기에는 귀를 솔깃해한다. ‘응급잠자리’는 구청의 지원으로 노숙인 쉼터와 연계된 사업으로, 여인숙 가운데 한 곳에 마련한 숙소다. 경찰서나 관공서 민원실에서 도움을 요청해 오면 쉼터 상담사들이 나가 노숙인들을 이곳에 데려와 재우기도 한다.

▲ 지하철 1호선 부평역 광장에서 만난 안상현 씨(가명)는 일주일만에 거리 상담사로부터 점퍼를 받을 수 있었다. 취재기자가 직접 안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쉼터에 대해 소개했다. 이어서 신선호 상담사의 구체적인 안내를 받은 안 씨는 쉼터에 입소하기로 결정하고, 인근 '응급잠자리'로 이동했다.

안 씨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직업상담사의 말에 얼어있던 눈을 반짝였다.

“아주 좋은 일자리는 아닐 수 있지만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일자리를 연결해 줄 수 있어요. 상담을 해서 몸 상태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마침내 안 씨는 우리의 제안에 쉼터에 입소해 자활을 시작해보기로 일단 약속했다.

“처음 거리에 나왔을 때 도와야 늦지 않았습니다”

한명의 노숙인을 쉼터로 연결했다는 뿌듯한 성과를 안고 인천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황규빈 목사는 거리 상담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 준다.

“거리에 처음 나왔을 때 도와주지 못하면 노숙생활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자활을 포기해버리는 거죠. 일주일에 세 차례나 발로 뛰면서 노숙상담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버스터미널에서는 부평역보다 노숙인들의 수는 적었다. 대부분은 거리에 나온 지 꽤 된 듯 보였고, 그 중에는 20대 젊은 사람들도 보였다. 거리의 불빛이 어두웠지만, 젊음의 생기를 가리진 못했다. 방한 내복과 겨울 옷가지들을 미리 부탁했는지, 각자 치수에 맞게 찾아간다.

이번에는 황 목사가 쉼터 식구 2명과 함께 먹을 것을 손에 들고 터미널 안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서둘러 따라가며 물으니, 귀찮아서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보통 새벽까지 막차가 있는 하차장 쪽에 노숙인들이 머문다고 했지만, 이날은 승차장 쪽에만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숙이 이모다.

쉼터 사람들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나이든 여성을 그렇게 불렀다. 언제부터 노숙생활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에 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 자신도 빵을 달라며 손을 들고 객사 내에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친다.

▲ 황규빈 목사와 신선호 상담사가 인천버스터미널에서 새로운 여성 노숙인을 발견하고 거리상담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숙이 이모가 몇 주 전부터 쉼터 사람들에게 일러준 사람이다.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신발은 슬리퍼였다. 그나마 한쪽 양말은 없고 다른 쪽 슬리퍼는 덮개가 끊어져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했다.

황 목사가 다가가 차분하게 상태에 대해 질문한다. 몇 마디 물어보고 어느 정도 파악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서 베테랑 형사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여인의 진술은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을 신뢰하기는 어려운 듯 했다. 약간의 정신지체가 의심되는 상황에 계속 거리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다행히 대화가 가능해 그녀도 여성들을 위한 노숙인 쉼터에 들어오기로 했다.

터미널을 나오면서 황 목사가 함께 온 쉼터 가족 김현수 씨에게 어묵을 사달라고 조른다. 얼마 전 자활 활동에 따른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한턱 쏘라는 의미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면서도 기꺼이 지갑을 펼치는 김 씨는 오랜 노숙생활로 이들이 빠져버린 잇몸을 가리지 못한 채 함박웃음이다.

▲ 거리상담은 인천 주안역까지 이어졌다. 앞서간 부평역과 버스터미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상담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예수님은 노숙인들을 먼저 만나실 것이다

마지막 목적지인 지하철 1호선 주안역은 최근 이노숙인들에게 뜨는 곳이라고 한다. 부평역과 동인천역 노숙인들이 부쩍 이곳에 많아지고 있다고 서 상담원은 설명한다.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가 상담사들을 잘 알고 있었고 노숙생활이 꽤 익숙한 노년층이 많았다.

한 60대 노숙인은 한참 나이어린 상담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옷가지를 요청했고, 어쩔 줄 몰라 맞절하며 점퍼를 전하는 젊은 상담사가 만들어낸 풍경은 웃기면서도 슬픈, 요즘 말로 웃픈 순간이었다.

상담사들은 부평역과 인천터미널에서처럼 이곳에서도 24일 부평역 광장에서 드릴 성탄예배에 꼭 참석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쉼터 식구들은 이들에게 줄 성탄카드를 사서 직접 손 편지를 보낼 계획이다. 거리 노숙인들에게도, 이들을 돌보는 거리 상담사들에게도 ‘메리 크리스마스’가 됐으면 하고 생각했다.

쉼터에 들어가게 된 두 사람이 꼭 자활에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거리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오시면 노숙인들 곁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 너무 상투적인 것인가. 노숙인들을 돕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손길이 귀하다. 여전히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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